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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Jul 04. 2019

아말피, 이탈리아의 공중목욕탕.

2019.06.26


오늘은 조금 부지런히 움직여 그렇게나 유명한 아말피, 포지타노, 소렌토를 한번에 돌아보기로 한 날. 관광에 크게 관심 없으니 별로 가고싶진 않고, 그러면서도 다들 최고라고 칭하니 왠지 궁금해 한번은 가봐도 좋을것 같고, 뭐 그런거다. 해안 절벽 따라 아말피, 포지타노, 소렌토가 순서대로 붙어있어서 버스타고 소렌토까지 찍고 오는 길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해변에 내려 수영을 하는게 오늘의 (셀프)미션.


역시나 게으른 우리는 생각보다 늦게 버스를 타게 돼서 아말피에 거의 두시에 도착했는데, 일단 가는 길이 역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황천길이었고 (차테라보다 약 한시간을 더 가는 길이다) 멀미가 죽도록 났다. 내리자마자 세상이 빙글 돌았다. 그래도 바다라며 휘청대며 해변으로 뛰어갔는데 웬걸 물이 너무 더러웠다. 이탈리아에서 이렇게 더러운 물 보기는 처음일 정도. 게다가 뒤로 보이는 풍경도 오면서 본 다른 동네보다 딱히 뛰어나지 않았다. 어제 갔던 챈타라나 오는 길에 본 다른 마을들, 절벽 아래 해변이 더 매력적이었다. 역시 유명세는 믿을게 못된단 걸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다. 레몬이 그렇게 유명해서 세상에서 제일 큰 레몬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들을 볼 수 있다는데, 크고 샛노란 레몬들이 여기저기 보이는게 신기했지만 그냥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어쨌든 생태계를 교란하는 단일경작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렇게 금방 바다에서 도망쳐나와, 관광객답게 레몬 젤라또라도 하나 먹어볼까 했더니 5유로란다. 폴리냐뇨에서 사먹던 젤라또는 어딜 가도 2유로였는데! 대신 외진 피자집에서 5유로에 여러가지 야채를 올리고 치즈는 뺀 피자를 한판 사먹었다. 결국 아말피 올드타운을 따라 괜히 흥미로운척 하며 잠깐 걷다 근처 다른 해변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 있는 지나가다 본 해변인데, 수백개의 아슬한 계단을 내려갔다 올라와야 한다. 내려가면서 벌써 이걸 올라올 생각에 정신이 아득하긴 한데, 아무튼 멋지니 보람찬거라고 서로 북돋웠다.


이탈리아는 귀여운게, 구글맵에 해변을 찍으면 ‘대형 공중 목욕탕’이라고 나온다. 처음엔 이게 뭔가 했는데 해변이다. 대형 공중 목욕탕. 맞지. 영이랑 둘이 항상 목욕탕 가자 목욕탕! 하며 꺄르르 한다. 정말 그렇게 불리는건지 한국어로 번역이 이상하게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굳이 검색해보지는 않았다. 그대로 공중목욕탕으로 남아줘.


그렇게 도착한 아말피 근처의 대형 공중 목욕탕은 아말피 바로 옆인데도 물도 투명하고, 조류도 거의 없고, 사람도 없어서 완벽했다. 절벽으로 둘러싸여있어 금방 해가 사라진다는 것만 빼고.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수영하고 누워있다가 힘들게 계단을 올라 영이가 암내 난다고 싫어하는 살레르노행 만원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만원 버스를 타고 돌아가 오늘은 살레르노 올드타운에서 밤산책을 하자고 했는데, 게으른 우리는 사실 살레르노 올드타운은 그대로 지나치고 해변 산책로의 방파제에 앉아 저문 해의 여운이 남은 하늘과 바다를 앞에 놓고 마트표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한통을 퍼먹었다(물론 우리는 숟가락을 항상 들고 다닌다). 예쁘다, 예뻐, 입이 닳도록 말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열대야 없는(게다가 건조한) 여름 밤 길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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