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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Sep 01. 2019

이별

왁자지껄 떠나가는 기억

낮에는 한번 건널 때마다 삼백원씩을 받아 은근히 자주 건너기 어렵던 그 다리도 잠드는 시간이었다. 나무다리에 철판을 덧댄, 라오스식 자본주의 다리도 밤엔 내가 다리 위에서 발을 구르든 다리를 일부러 열번 왕복하든 신경쓰지 않았다. 그 다리 앞에서 그가 놓고간 여권 두개를 뛰어 가져다주며 다시한번 포옹했다. 너는 이별이 어려워? 나는 이별이 너무 어려워.

너는 이별이 어려워? 언제나 곧 만날 거라고 생각하면 쉬워. 다 그런거지. 몇년이 지난 나는 이렇게나 변해 있었다. 수많은 이별을 겪고 나서의 나는 이제 이별이 별 것 아니게 느껴져. 다시 만날 연이라고 굳게 믿어서이기도 하고, 이별하지 않으면 끝없이 불어날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정리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이별해야만 더 아름다운 기억과 관계들도 있기 때문이고. 이별을 대하는 마음이 가벼워지자 이별의 절차도 간소해진다. 놓지 못하는 손과 가슴은 내려두고 우리 미래를 향해 인사하자. 만남의 포옹을 더 깊게 들이쉬자.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이별도 있다. 어려워서 처음인 것처럼 서투른 이별도 있고. 작년 이맘때 유럽을 떠나는 비행기에서의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이별하는 마음을 지독하게 쏟아내고서야 잠들었지. 가벼운 마음으로 보류해둔 지난 이별들의 미련과 슬픔이 모두 고개를 드는 시간이었다.

또 떠난다. 이번에도 보류해둔 이별들이 모두 밀려온다. 이탈리아의 하얀 돌집에, 몸만 살짝 틀어도 일제히 멈춰서는 운전자의 친절함에, 19일간 비는 커녕 구름조차 낀 적 없는 지독히 파란 하늘에, 유리처럼 투명하면서 너무 깊어 속을 알 수 없는 바다와 그래서 얻은 작은 발의 작은 상처들에, 아침마다 먹던 크로아상에, 과일가게 피자가게 젤라또가게 사장님에게, 숙소 주인에게, 길거리 악사에게, 10시에 지는 해에게. 내년에 또 만나. 여름 구경 한번 제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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