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 Sep 01. 2019

내 글은 손끝에서

머리가 기능하지 못할 때도

오늘은 아마 열번쯤 눈물을 삼킨 날이었는데, 대견하달지, 시린 눈을 하고서 아직 한번도 눈물을 떨구진 않았어. 아마 한번 더 밥이 나올 때 쯤이면 못 참지 않을까. 보이는거라곤 녹아내리는 배추와 한 두 조각 장식처럼 그 사이에 숨어있는 빨간 고추뿐인 기내식으로 점심을 먹고 나니 더이상 참지 못할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쩌면 그 밥을 대충 들이키고 멍한 기분으로 읽는 책의 분위기 때문일지도 몰라. 사실 난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제목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책의 세계에도, 비행기 안의 공기에도 머무르지 못하는 그런 정신과 마음이야. 글을 쓰면 나아질까, 차라리 내 머릿속에 머무르기로 해.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저자는 그의 글을 읽지 않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해. 내가 그러는 것처럼. 아무나 잡아다 내 얘길 잔뜩 하고 날 드러내곤 나의 솔직함과 쿨함에 스스로 감탄하던 옛날의 나처럼.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때 쯤이었지.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한지야 오래지만 글을 쓰고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하기 시작한게 딱 그때 쯤이야. 글을 보여주는 용감함에 대한 글을 시작으로, 용감함이 아니라면 두려움을 밀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요즘의 나는 말수가 적어. 날 아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선 변함 없지만 아무에게나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아. 네가 지금의 나를 만났다면 우린 맥주잔을 사이에 두고 너의 가장 솔직한 내면에 대해, 신과 죽음과 삶과 우리의 부모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었을까. 12월 말의 첫눈을 맞으며 구두굽 소리만 울려 퍼지는 어두운 성수동 골목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더, 상실하는 마음에 닿을 수 있었을까. 요즘의 나는 마음이 적어. 요즘의 나는 긴장이 적어. 요즘의 나는 함축적이지도 우회하지도 않아.

기억을 잘 못해. 한두시간 전의 일들도 기억하지 못해서 하루종일 울었어. 사실 울지 못해 꾸역꾸역 눈물만 삼켰어. 판단도 못해. 상황 판단이 안돼서 하루종일 실수만 했지만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일줄은 알아. 현재와 가까운 과거를 잃으니 곧 사라질 순간들이 1분에 60장짜리 화면 전환의 아주 오랜 영화처럼 존재하고 그나마도 오랜 과거의 기억들에 잠식당해. 아주 오랜 과거의 기억들로. 기억에 갇히기는 참 쉬운데 순간에 버티고 있는건 참 어렵다. 요즘 가장 두려운 건 이대로 갇혀버리는 거야. 마구 쓸려다니는 무중력의 멍청함에.

내가 잃지 않은 것은 이 순간의 내 언어, 내 글, 무중력의 머릿속에 유일한 내 기둥, 내 지지. 곧 잃어버릴 순간들을 되돌릴 수 있게 하는 건 현재의 내 타이핑, 멍한 마음도 적어낼 수 있는 머리보다 숙련된 손끝. 내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더라도 손은 마음을 가리키게 되지 않을까. 나를 관통하는 손 끝.

적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것은 내가 여전히 적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야. 이것만은 잃지도 잊지도 않았다고, 어쩌면 멈추는 순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두려움에.


+글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쓰는 거라고, 네. 존나 그렇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