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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Dec 03. 2018

진짜 진주는 더이상 찾지 마시오

누가 내게 진주는 귀한 보석이라고 말해줬더라. 엄마일까, 동화책일까, 만화영화일까, 기억은 안 나도 어릴적 내게 진주란 금이나 다이아몬드와 함께 세상 제일가는 보석이었다. (있잖아, 진주는 얼마야? 막 이렇게 크면 백만원? 천만원?) 그래서 엄마의 보석함에서 오래된 진주반지를 조심스럽게 꺼내 손가락에 걸치곤 (낀다는 표현을 사용하기엔 당시 내 손이 너무 작아서 걸쳐놓는 것에 가깝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 보고, 거울에 비춰보고 다시 대충 넣어놓곤 했다. 그 귀한 보석은 그 짧은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내 것이 될 순 없었다. 아무리 엄마가 어린이용 진주 목걸이와 팔찌, 머리핀을 주렁주렁 달아줘도 보석함의 '진짜'진주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 앞 문구점에 한정판매로 '진짜!' 진주가 '있을 수도 있는' 조개 통조림이 등장했다.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던 인형놀이 스티커가 한 장에 200원이었던 시절에 진주 통조림은 2900원이었으니 우리의 유흥거리로는 상상도 못할 최고가였다. 게다가 진주의 희귀성을 반영해, 진주를 품은 조개 통조림은 그 중 몇개나 될 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
그날 통조림을 몇개나 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를 까서 아무것도 찾지 못하곤 고민하다 하나를 더 까는 식이었다. 그나마도 익히지 않은 조개 살을 직접 파헤치는게 징그럽고 무서워서 소리 질러가면서. 결국 각자 하나씩 진주를 찾아(물론 찾을때는 환희의 소리를 질렀고 모든 아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행복한 마음으로 문구점을 나섰다. 내 보석함의 가짜 진주처럼 크고 동그랗고 통통하긴 커녕 작고 납작하니 제멋대로 생겨먹은 진주지만.
아마 그걸 팔겠다고 했던것 같다. 진주는 최고의 보석 중 하나니까, 나름대로는 투자를 한 거다. 이걸 얼마에 팔 수 있을까? 백만원? 하면서 집에 갔겠지. 그리고 엄마한테 보여줬겠지. 곧 전혀 상품가치가 없는, 모조품만도 못한 진주라는걸 깨닫겠지.
그때의 내 마음은 어땠을까? 내가 최고라고, 진짜라고 믿었던 것의 붕괴.

재밌는 점: 진실을 깨닫고 충격받던 그때 그 나이보다 거의 3배는 더 나이먹은 지금, 남의 살을 파헤쳤던 나에 대한 원망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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