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들은 요상한 모양의 유인원 일러스트를 중심으로 이토록 모여있는 것일까? 트위터 또는 디스코드 등지에서 자기가 콜렉팅한 유인원 그림을 자랑하는 것으로 모자라 뉴욕 허드슨강에 요트를 띄어놓고 요란하게 파티를 벌이는 걸까? 이들을 군집시키는 힘은 BAYC라는 커뮤니티에서 나온다.
BAYC NFT를 구매하고 홀더들만 들어올 수 있는 채널에 들어가 시시껄렁한 농담을 나누는 집단 경험은 서로에게 매우 긴밀한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데, 이들에게 BAYC는 단순한 일러스트가 아니라 개개인의 디지털 정체성이자 크립토 생태계에서 힘깨나 쓰는 BAYC 소속임을 드러내는 공동 정체성의 표상이며, 동시에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디지털 자산이다.
NFT아트를 이해하는 데 있어 커뮤니티는 매우 매우 중요하다. JPG, GIF 파일에 대한 메타데이터를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온체인한다 해서, 곧 NFT라 하여 당장 모든 NFT가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토록 비싼 가격의 NFT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대체불가능함’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서 상호 합의에 의해 가치체계를 생성하는 공간이 커뮤니티이다.
NFT아트 이전에도 모든 예술작품의 가치는 타자에 의해 생성된다.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역사, 작품의 동시대적 가치, 작가에 대한 타자의 평가와 인식에 의해 작품의 가치가 매겨지듯, NFT아트도 하나 다를 것 없이 사람에 의해 가치가 생성된다(물론 암호화폐, 곧 화폐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블록체인 위에서, 탈중앙화 크립토 생태계 위에, 그리고 온라인 채널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 NFT 커뮤니티이다.
NFT 생태계의 커뮤니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유형의 커뮤니티가 존재한다. NFT작가들이 모여서 정보를 공유하는 창작자 커뮤니티부터 BYAC와 같이 대개 10000여 개의 1of1 NFT 구매자들로 군집되는 대형 커뮤니티, NFT아트 작가가 콜렉터들과 디스코드, 클럽하우스 등의 채널에 모여 작품의 세계관과 로드맵을 나누는 커뮤니티까지 각기 다른 형태와 규모로 이루어진다.
본론으로 들어가 NFT 기반 공연기획 모델에서 커뮤니티는 어떤 형태여야 할까? 당연하게도 백 점짜리 정답은 없다. 공연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서,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역량 내에서 설정하면 될 뿐이다. 그에 따라 NFT 발행량, 작품 형식, 가격 등도 결정될 것이다.
예를 들어 100여 명의 커뮤니티 멤버를 확보하고 소극장에서 이들만을 위한 프리미엄 인센티브로 공연을 선보일 수 도있고, 커뮤니티의 정체성을 자선 단체로 놓고 NFT를 통한 수익으로 자선 공연을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 관객까지 공연에 수용하여 공연의 수익을 커뮤니티 멤버들과 재분배하는 나름의 토큰 이코노미를 구축하는 방법도 있겠다. 하물며 기획 역량만 된다면 PFP 형식의 NFT를 10,000개쯤 발행하고 홀더들을 위해 섬을 하나 빌려 야외 페스티벌을 벌여도 문제 될 게 없다.
이렇듯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좋아하고 아티스트의 계획에 동참해주는 소중한 커뮤니티만 있다면 콘텐츠와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매우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NFT-커뮤니티-공연’이라는 NFT기반 공연기획 모델에서 가장 중요하고 선제되어야 하는 과제는 나의 NFT를 구매하는 것은 둘 째치더라도, 아티스트의 세계관에 공감을 표해주고 함께 공유해주는 팬덤을 형성하는 데 있다.
NFT 이전에도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온라인 채널을 통한 ‘크리에이터 경제’는 존재하였다. 이른바 ‘MBC 공채’와 같은 메인 미디어의 도움 없이 누구나 크레이티브한 콘텐츠만 있다면 자신의 팬덤을 형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두 눈으로 확인해왔다. 크리에이터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만명의 팬보다 1000명의 진정한 팬만 보유하면 된다고 하는 것처럼 크리에이터에게 진정성 있는 애정을 가진 팬들은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후원을 하고 유료채널에 가입하며 앞장서 이들을 만나러 먼길을 떠나곤 한다.
그러나 기존의 크리에이터 경제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하는데, 팬들과 소통하는 SNS 채널 내지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은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에, 그들의 광고 정책과 알고리즘 정책에 팬덤의 고유한 문화를 끼워 맞추게 한다. 중앙화된 운영체제를 갖춘 WEB2.0의 한계일 것이다. 크리에이터와 팬덤이 자기들만의 콘텐츠와 밈을 공유하며 ‘자치 문화’를 형성할 순 있어도, ‘자치 경제’까지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블록체인 위에서의 커뮤니티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NFT를 통해 콘텐츠의 오너쉽을 자신의 콘텐츠에 애정을 표해주는 콜렉터들에게 부여하고, 스마트컨트랙을 통해 그들만의 토크노믹스를 형성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또 분배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NFT는 커뮤니티로부터 가치를 얻고 커뮤니티로부터 가치의 확장성을 얻는다. NFT에 커뮤니티 형성이 중요하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커뮤니티가 중요하다는 거는 이미 충분히 알았다. 근데 왜 하필 공연인가? 커뮤니티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라 하지 않았었나. 사람과 사람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집단 경험으로부터 연결된다. 그리고 그것이 실체가 분명한 오프라인이라면 그 집단 경험이 더욱이 공고해질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이동하고 두 영역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는 작금에 있어 시대역행적이라 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도 크립토 생태계의 탈중앙성에 상당한 호기심을 가져 이 판을 꾸준히 들여다봐왔고 블록체인, Defi, 암호화폐, DAO, NFT, 메타버스 등의 키워드로 설명되는 WEB 3.0의 미래를 매우 긍정적으로 관망하는 사람으로서 오프라인에서의 경험이 중시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공연의 본질이자 오프라인의 본질인 '라이브니스(liveness)', 곧 현장성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듯싶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뉴플랫폼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메타버스에 대한 세상의 관심도 역설적으로 오프라인 경험에 대한 결핍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셀 수 없이 다양해진 온라인 채널을 통해 텍스트, 음성 등의 방식으로 충분히 의사전달이 가능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와 관계 맺는 사람과 같은 공간과 현장까지 공유하고 있음을 원하는 것이다. 즉 메타버스와 AR, VR 기술의 목적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새로운 공간을 태동시키는 게 아니라 현실(reality)의 확장에 있으며, 철저히 온라인 영역에서 설명될 것만 같지만 이는 충실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기술적 브릿지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NFT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기획된 공연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문화적 브릿지로서 기능할 수 있다. 무대에 어떠한 퍼포머가 등장하여 퍼포먼스를 시연하는가 하는 공연의 내적 구성도 중요하지만, 온라인 채널만을 통해서만 관계 맺음을 갖던 커뮤니티가 공연이라는 같은 시간과 공간 및 콘텐츠를 공유하고 있다는 현장 그 자체가 더 중요한 본질이다.
여기까지 어떠한 NFT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커뮤니티가 왜 그토록 중요한 건지, 그리고 어떻게 커뮤니티를 구축해야 할지 소략하게나마 이야기해보았다. 이렇게 보면 NFT 아티스트가 가장 선제할 작업은 NFT를 얼마에 팔고 어떻게 홍보할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내가 과연 누군가의 마음을 훔칠 만큼 호소력 있는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가? 나의 작품세계와 내러티브가 충분히 매력적인가? 따위를 자문하는 과정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작업인 것 같다. 어렵고도 험준한 과정임이 분명하지만 아티스트의 콘텐츠와 계획에 동참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한 다음부터는 그 잠재력과 확장성이 무궁무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