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도 못 쉴 만큼 입속으로 음식을 밀어 넣고 싶을 때가 있었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일상이 따분했고 하고 싶은 게 없더라도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맛있는 것을 찾아다녔다.
남들이 찬탄하는 것을 해봐야 직성이 풀렸지만 막상 경험한 뒤에 새로운 자극을 원했다. 경험을 달성한 뒤에 오는 미묘한 허무함은 나의 허기가 육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난 뱃속에 음식을 적치하거나 남들이 가볼 만한 명소에서 인생 사진을 남기는 것으로 내면이 채워지지 않았다. 실은 내가 원한 건 사사로운 감정의 공유, 함께있는 이와의 시간적 공명이었다. 난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어떠한 비난 없이 나눌 수 있는 동료이자 친구를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싶었다. 그를 통해 미래의 불안을 타개하고, 우울함의 징검다리를 건널 용기를 얻기를 원했다. 때로는 사사로운 농담과 짧은 산책으로 우리의 내일은 더 재미있을 거야,라는 시시한 고백을 나누는 장면을 꿈꿨다. 그러나 유사한 결을 갖추지 않은 사람과 오랜 시간을 보냈던 시절, 나의 바람은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었고 점차 말이 없는 노리개가 되었다.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이와 함께 하는 순간이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지 돌아보는 건 중요하다. 시간과 감정을 공유하는 때에 상대가 나의 언행의 장벽을 야기하는 건 좋은 징조라 할 수 없다. 건강한 관계에서는 서로에 대한 강요나 비난이 적용되지 않는다. 다 널 위한 거야,라는 포장이나, 나 아니면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겠어,라는 겉치레의 설명이 오간다면 애정을 가장한 강요라는 것을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나를 고치려 들거나 충고라는 명목으로 신랄한 조언을 덧붙이는 상대라면 그는 나를 아끼는 마음보다는 멋대로 부리고 싶은 욕구로 들어차 있을 확률이 높다. 당시에 나는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지부진하게 관계를 이어가며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회피적 욕구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부끄러운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직한 태도를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상태에서 언제까지나 벗어날 수 없다. 난 내가 연애했을지언정 결코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에야 숨도 못 쉴 만큼 목구멍으로 쏟아붓던 폭식을 멈출 수 있었다.
해로운 관계를 끊어내자 더는 먹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