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십 대 후반까지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없었다. 저승으로 가는 순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에 필사적 의지로 죽기 위해 애쓰지 않았지만 당장 오늘 죽더라도 아쉽지 않았다. 그 이유인즉슨 죽음이 쓸고 간 자리에 놓일 후련한 자유가 보였던 탓이다. 난 멋없고 강퍅한 일상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지루해서 하루빨리 늙수그레한 노인이 되고 싶었다.
내가 놓인 삶은 미래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그려지지 않는 불분한 상태의 연속이었다. 자기 불신과 환경적 제약으로 인한 한계는 어쩔 수 없는 재해 같았다. 난 비루한 처지를 뛰어넘을 만큼 비상한 머리와 재능이 없었지만 지닌 꿈은 원대했다. 이것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 제일 큰 원인이었던 것 같다.
오래전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 상처 난 마음을 동여매야 하거나 벌어진 부위가 솔아서 온 신경이 쓰일 적에도 책상 위에 웅크리고 앉아 연필을 손에 쥐었다. 글쓰기는 슬픔의 밑단을 수선하기 위한 회복의 방식이자 부정적인 감정이 내면에 들어차지 않도록 필요에 따라 배수하는 일이었다. 난 글을 써 내려가며 딱하게만 보였던 마음을 바로 보고, 현실을 부정하는 대신 겸허히 받아들이는 지혜를 배웠다. 글을 쓴 뒤로 전과 비슷한 듯하지만 많은 것이 달라졌다. 조금씩 마음은 견고하고 촘촘히 완성되었다.
지금도 난 책이 되지 못하는 기록이더라도 적어 내려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순간, 그 기록을 돌아보면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벗에게
응원을 받는 듯해서 안심한다. 그간 내가 헛된 세월을 보낸 게 아니라는 것이, 글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기록을 통해 난 어제보다 오늘 더 나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앞으로의 시간을 더욱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키울 수 있었다.
그것이 지금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말해주고 싶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