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
이야기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하다가
은재는 애인을 인터뷰했다.
애인은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은재와 애인은 나란히 거리를 두고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사무실 안의 적막한 공기가
인터뷰와 잘 어울렸다.
이하는 인터뷰 내용이다.
처음 우울증이란 말을 들었을 때 어땠나?
A. 은재가 처음 자신의 병명을 밝힌 것은
함께 여행을 간 날 밤이었다.
은재는 조심스럽게 할 이야기가 있다며
나를 앉혀놓고 두 손을 잡고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은재의 앞에서
그때 나는 놀랍도록 덤덤했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겐 특별한 힌트라고 할지,
카드라고 할지.. 그런 게 있었다.
나는 우울에 면역이 있는 가정에서 자랐다.
가정환경에 우울증 환자가 있었다는 게 아니라
'우울'이란 감정이 생기기 쉬운 환경이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이해했다고 할까.
적어도 놀라지 않았다.
은재는 연애 초기 공황장애가 자주 오고 종종 자해를 했는데
그것을 보았을 땐 어땠나?
A. 공황장애를 처음 봤을 땐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무턱대고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너무 고통스럽고 아파 보였다.
그리고 자해를 처음 보았을 때는 화가 났다.
사실 자해라는 것이 나의 삶에 허용되지 않아서 더욱 그랬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처음엔 같이 있을 때 상처를 보아도
한 마디도 안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엔 내가 없어서 그랬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미안했다.
은재가 자해를 습관처럼 했을 때,
정말 죽을까봐 걱정된 적은 없었나?
A. 없었다.
그랬을 거라면 진작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그럴 만큼 용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다.
그리고 자살보다는 자해가 더 걱정스러웠다.
은재가 우울증이 있어 다루기 어렵다고 느낀 점이 있는가?
A. 은재의 수포처럼 퍼지는 불안과
가벼운 출렁다리처럼 흔들리는 감정변화 때문에
늘 비상대기 상태였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나의 연애는 대체적으로
자기중심적이었기 때문에
연애의 기류가 상대로 흐르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맞춰주고,
배려해주고,
달려가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중엔 우물 안에 있는 은재를 보며
오기가 생겼다.
거기서 꺼내줄게.
그리고 그 오기엔 온통 사랑이 있었다.
은재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있어"라는 말이다.
은재와 퍽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은재의 주문 같은 말이다.
아무튼
정말 그런 걸까.
그런 생각들이 든 순간부터는 어렵지 않았다.
은재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남들 앞에서 의식하는가?
A. 의식한 적은 없다.
내 친구들이 그런 이유로 은재를 판단하더라도
나와 은재가 노력하면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았다.
처음에 은재를 부정적으로 보았던 친구들도
지금은 다른 시선으로 은재를 보고 있다.
그리고 연애 초반에 은재에게 많은 친구들을 소개시켜주었는데
그것은 사람과 섞이려하지 않는 은재를
나름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 거였다.
물론 그게 너무 부담이 되었다면 미안하다.
은재로 인해 정신과에 처음 방문했는데 그때 기분은 어땠나?
A. 그냥 병원이라고 생각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나는 은재를 환자로 취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은재에겐 우울증이 있다.
그럼에도 같이 살고 싶다고,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이유가 궁금하다.
A.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의 연애가 사실 그렇지 않나.
결혼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뜬구름 같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은재가 변했다.
변하고 있다.
그 모습에 확신이 들었다.
은재는 모르지만,
모른다고 말하지만,
은재는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안다.
그리고 내가 출장을 갔을 때,
은재의 모습을 보면
은재는 내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방향을 잘 알고 있다.
그런 모습이 결혼에 무게감을 만들었다.
따라서
함께 살고, 부딪히고, 부대끼면서
은재가 최종적으로 약도 끊고
자신만의 생활을 무리없이 하게끔 하는 것이 나의 목표다.
소소한 질문이지만,
결혼 뒤에 은재의 우울증을 본가에 알릴 생각이 있는가?
A. 없다.
이건 은재와, 와이프와 나의 개인적인 일이니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알아서 도와줄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본인이 밝히길 원한다면,
말릴 생각도 없다.
평소에 은재에 대해 조심하는 것이나 남몰래 노력하는 점이 있나?
A. 오히려 환자처럼 대하지 않으려고 한다.
유별나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픈 사람에게 상처를 의식하도록 하면
아파진다.
그래서 나는 은재를 조금 예민한 사람,
그 정도로 생각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개인적으로는 많이, 자주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내가 힘들다, 괴롭다, 무너져버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마치 그건 은재와 같은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다가
나 혼자 추락해버리는 공포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간혹 털어놓는다.
저번 주에도 함께 소맥을 마시며 이렇다 할 것들을 털어놓았다.
지금은 은재가 나의 고민을 들어도
함께 무너지는 것이 아닌
건강히 조언해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맞지?)
은재를 오래 봐오면서 많은 일이 있었다.
좋은 일도 있었겠지만 초반엔 힘들고, 짜증스러운 일이 더 많았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수백통의 부재중을 받거나
갑자기 울면서 집 앞으로 찾아오는 등..
그런 순간, 은재로 하여금 지치진 않았나?
A.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우리는 앞서 말한 것들 외로도 참 많이 싸웠다.
많이 싸우고, 헤어져도 보고…… 소위 말해 더러운 꼴도 많이 봤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보통의 연인들의 일이 아닌가.
은재가 우울증이어서 일어났다고도,
은재의 회복을 도우려고 재회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이 시킨 일이었을 뿐이다.
우리가 2021년부터 지금까지 만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무조건 보듬어주지 않았던 것도
은재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일으켜주는 사람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일어나는 건 네가.
나는 언제나 옆에 서있는 사람.
그게 맞았던 것 같다.
그리고 우울증에 대해 심각해지지 않으려 했던 것도.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우울증이 있는 은재에 대해
남들보다 여린 만큼 생각도, 속도 깊고
많은 것들을 무서워하는 만큼 관찰력이 좋으며
자신의 감정에 언제나 솔직하다라고 생각했다.
온전히 단점만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생각이나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건 은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울해진 은재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가?
A. 줄곧 떠나기도 했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는 차를 타고 슝-
어딘가로 떠나기도 하고
그로써 어딘가 좋아하는 장소가 생기기도 하면
더욱 바랄 게 없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애인인 은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은재야.
너는 지금 잘 하고 있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너무 바꿀 수 없는 과거에 머물지 마.
언제나 현재와 미래에 눈을 둬.
네가 너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