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N. BANNA
은재는
열흘 뒤 퇴원했다.
물론 분명한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은재는 일주일 뒤에
병원에 한 차례 더 방문해야 했다.
하지만 일단 퇴원을 했다는 것에 속이 시원했다.
이제 언제든 씻을 수 있다!
이제 내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다행히
업무에서 잘린 것도 아니었다.
은재는 퇴원 후,
담당자에게 일감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달에 처리한 원고의 양이
터무니 없는 정도여서
다음 달에도 가난할 게 뻔할 뻔 자였다.
아, 그러고 보니.
또
투고 거절 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웹소설도 제자리 걸음이었다.
전혀 진전이 없었다.
그러니까
사실상 퇴원을 했을 뿐이지
은재의 인생은 여전히 불행이었다.
하지만 은재는 퇴원을 했다.
병원에서의 탈출.
그것이 은재를 오자마자 책상에 앉게 했다.
은재는 책상에 앉아
스무 장을 넘게 쓴 일기를 다시 펼쳤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PLAN. A
PLAN.B
라고 적었다.
그리고 PLAN.A에는 이런 내용을 적었다.
플랜 에이
지금 하는 일의 최대치, 그것에 절반만 일 하고 월급을 받는다.
거기다 남는 시간을 모조리 개인 작업에 투자한다.
여기서 개인 작업이란 소설, 웹소설, 브런치 스토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PLAN.B에는 이런 내용을 적었다.
플랜 비
지금 하는 일의 최대치를 한다.
개인 작업은 적어도 올해까지는 하지 않는다.
그런 뒤, 예술적인 영감을 얻기 위한 행위를 한다.
여기서 예술적인 영감을 얻기 위한 행위는 영화 보기, 독서, 여행 등을 의미한다.
은재에게는 이런 두 가지 수가 있었다.
그리고 플랜 에이에는 개인적인 작업을 통한 발전을 할 수 있지만,
지금 확실히 은재가 개인적인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는 장단점을 작성했고,
플렌 비에는 경제적인 것을 해결할 수 있지만,
꿈의 실현이 늦어진다, 는 장단점을 작성했다.
은재는 팔짱을 끼고 자신이 쓴 것을 바라봤다.
바라보면서 별다른 생각을 한 것은 아니고
플랜 에이는 작전명 사과,
플랜 비는 작전명 바나나, 라고 이름을 붙이기만 했다.
그리고 이후에
은재는 애인에게 이런 작전들을 설명해주었는데,
은재의 애인은 그런 은재의 모습에 기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
그게 좋아 보이는데?
그리고 언제 시작하든 늦은 건 없어.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넌 아직 너무 어려.
애인의 그 말을 듣고
은재는 그런 날들을 떠올렸다.
돈이 없어서 쪽팔렸던 순간들.
아니,
병원비가 무서워서 검사를 거부했던 며칠 전.
그리고 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애인은 한 마디를 더 했다.
그래도 넓게 보면
지금 너는 네 꿈을 이룬 것과 같지 않아?
어쨌든 글을 쓰고 있잖아?
하지만 그건 내 글이 아닌 걸.
그렇게 애인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은재는 하지 않았다.
솔직히
올해부터 꿈이 뿌리 채 흔들렸다.
돈 때문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국어 강사와 사무직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그를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했고
이내 예전처럼, 예전만치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물론 정확히 그런 노력을 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은재는 애인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단단한 마음으로
예쁜 메모지를 꺼냈다.
그리고
'작전명 바나나'라고 제목을 붙여
PLAN. B의 내용을 썼다.
한자, 한자 꾹꾹 눌러쓰면서
이것들을 분명히 했다.
바나나 작전의 끝은 개인 작업의 시작이라는 것.
은재는 아직 핏덩이처럼 젊다는 것.
아, 그리고
개인 작업을 위한 영감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
그것까지.
은재는 그렇게 적어놓은 뒤에
책상 곳곳에 붙였다.
아주 예쁜 메모지에 적힌
작전명 바나나와 은재의 다짐들이
반드시 빛을 발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유명한 가수는
자기 자신이 엄청난 재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성실히 연습하면서 자신이 무조건 가수가 될 거라고 믿었다던데.
어렵지만 그 마음의 흉내내면서.
오늘은 간단히 일기를 마치고
은재는 해야 할 일을 했다.
서서히 사그라드는 불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