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커서 온 사춘기
은재는
아침이 되어도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리고
하느님,
주님,
부처님,
알라신이시여.
제 두 눈을 멀게 하시고
제 숨을 끊어주시옵소서.
끊임없이 기도했었다.
왜냐하면
은재는
부모님과 살고 있는 이 집이
울고 싶을 정도로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매 순간마다 숨이 막혀서
베란다에서 떨어지는 상상을 수도 없이
걱정 없이
할 정도였다.
그래서 은재는 가출을 결심했다.
은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가방을
옷장에서 꺼내어
짐을 꾸렸다.
그리고
짐을 꾸리면서
자신이 했던 최초의 가출을 기억해냈다.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의 일로
그때 책가방에 짐을 싸서 가출을 했는데
짐은 먹을 것과 애정하던 스티커북 따위가 전부였고
그때 고작 오후 6시가 넘어서 집으로 복귀했다.
그게 은재가 할 수 있었던
최고 수위의 가출이었다.
은재는 그때를 떠올리며
가소롭게 웃고는
이번에는 감히 제대로된 가출을 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짐을 꾸려 조용히 집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당시 혼자 살고 있던 애인의 집으로 들어갔고,
그 날부터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게 은재의 가출의 시작이었다.
애인의 집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은재는
엉망이 된 마음으로 행복했다.
엉망이 된 마음으로 행복했다는 것은
속은 엉망진창인데,
사랑하는 애인과 생활이라는 것을 함으로써
행복했다는 뜻이다.
은재는 당시 정말 정말로 불행했다.
이유는 늘 그랬듯이 알 수 없지만,
부모의 명의로 된 집에 얹혀 살면서
감히 양심도 없이 부모의 동태가 불편해
숨을 쉬듯이
집을 나오고 싶었을 만큼.
그리고
정말 집을 나올 만큼.
하지만 그 불행이
애인과 생활하는 데서 오는 행복을 희석시키진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은재는
경제적인 책임을 모조리 애인에게 맡기고
쉴 새 없이 집안일을 하고,
애인을 위한 야참을 만들면서,
그 외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퇴근을 하고 돌아올 애인을 기다리는 게
은재가 정한 은재의 할 일이었다.
(은재가 70키로까지 찐 때가 바로 시기다)
그리고 은재의 부모님은
일주일이 지나서 은재에게 연락을 하셨다.
언제 들어올 거니?
애들이 너 기다린다.
엄마다운 말이었다.
자신의 감정은 철저하게 숨기고,
그러니까
은재를 걱정하는 마음과 은재를 향한 노여움을
철저하게 숨기고
아이들이란 방패를 써서
은재를 약하게 만드는 화법.
하지만 당시 은재는
우울에
푸름에
돌아버린 상태였음으로
엄마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빠가 자고 있을 때
본가로 기어들어가
은재가 키우던 고양이 두 마리를,
심지어 캣타워까지 들고 나왔다.
앞뒤를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애인의 집엔
쌍둥이인 고양이 두 마리가 더 있었는데,
그 당시 그 친구들은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합사는 무리라는 것을 알았는데,
은재는 애인에게 부탁해
자신의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결국
좀처럼 고양이 네 마리의 합사가 되지 않아
그 좁은 집에서
펜스를 치고 살아야 했다.
엉망진창인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은
당연히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집을 나왔다는 해방감 때문인지
애인과 생활을 한다는 편안함 때문인지
은재는 행복했다.
사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 있었던 상황은 아니었는데도.
(애인은 당시 불합리한 임금에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평생 둘이 살아도 좋겠다고.
물론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평생 살 수는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