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 따위는 전혀 없었던
엉망진창이었던,
하지만 행복했던 가출은
약 7개월 뒤에
끝이났다.
사실
애인의 집으로 가출을 했을 때는 여름 방학이었고,
보장된 가출 기간은 2개월이었는데,
2개월이 끝나갈수록 은재는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로 복학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빠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뒤
(부탁의 메시지였지만 아무래도 당시의 감정상 마찬가지로 폭언이었으리라)
휴학을 했다.
그렇게 은재는 애인의 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매달 1일에 부모님이 보내주신 용돈으로
5개월을 보냈고,
마침내 5월이 되었는데
은재의 마음에 무슨 봄바람이 불었는지
졸업을 위해 따야 하는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부모님의 도움이 있어야 했으므로
은재는 가출을 했을 때보다
더 쉬운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아빠가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셨다.
그리고
집은 내가 나왔을 때와 다른 게 없이 그대로였다.
엄마와 아빠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아빠는 은재가 가출을 했다는 것을 잊은 것처럼
평소라고 할 법한 익숙한 태도로 은재를 대했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이제 와서
그때,
우리 세 가족이 오랜만에 식사를 했던 때를 떠올리자면
떠올려지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은재는 집으로 돌아왔고,
자격증 학원에 등록해 학원을 다녔다.
그리고 한 달 뒤,
은재는 엄마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
너네 아빠,
너 짐 챙겨서 나갈 때
방에서 울었다.
그니까 앞으로 잘 해.
사실 아빠가 운 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때가
몇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장례식,
그것도 발인 때였기 때문에
아빠가 은재 때문에 울었다는 말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은재는 엄마를 보며 민망하게 웃었다.
엄마는 그런 은재를 보며
사춘기 없이 자라서 걱정 안 했는데,
이제 와서 사춘기냐며
삐쭉거리며 혼을 내셨다.
사실 혼을 내신 것도 아니었다.
그냥 투정이랄까?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이번 일로 은재를 혼낸 사람은 없었다.
물론 그것이
엄마와 아빠가
은재의 우울증을 이해한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워낙 그들의 성품이 그러하므로)
가출을 했던 당시와 이후에 은재를 대하는 그들의 방식을 떠올리면
고마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은재가 부모였으면
가출한 딸에게
매달 부치던 용돈은 안 부쳤을 것 같거든.
그리고
결국엔 기다려준 것이니까.
돌아올 때까지.
돌아올 것이라 믿고서.
그런 마음을 떠올리면서
그날따라 더 충실히 수업을 들은 은재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자신의 가출을 돌이켜봤다.
家出.
불행하단 마음으로 집을 나왔고,
나와서
물론 애인과 함께 행복했던 시간도 있었지만
불행하다는 생각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으니
가출이 답은 아니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가출을 안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
하지 않았더라면
또 한 번 엄마나 아빠 앞에서 자해를 했을 것이고,
그래서 또 그 둘은 슬펐을 것이고,
그걸 은재 자신의 두 눈으로 직면하면서
또 불행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 커플에게는 자양분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 시간이 있음으로써
더 굳게 서로를 의지하고 믿을 수 있게 되었고
미래를 구체적으로 만들어나가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은재의 가출은
교훈은 없지만 아예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었다.
뭐,
물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로부터 1년 하고 5개월이 지난
지금
은재는
여전히 부모님 명의로 된 집에 살고 있다.
지금은
가출할 생각은 없고,
빨리 결혼할 생각은 있다.
그게 은재의 생각대로 될지는
모든 일이 그렇듯
알 수 없지만.
그럼 가출 일기는 심심한 질문을 던지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저지른 최대의 불효는 무엇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