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역사
은재는 누군가
바람을 피워서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중립을 지키는 편이다.
당한 그 사람도,
바람을 피운 그 사람도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한다.
그러니까 바람 자체를
앞뒤 안 가리고
비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갖게된 이유에는
은재가 중립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은재의 개인적인 속사정이
개입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은재는
몇 번의 바람을 피워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은재는 세 번의 장기연애를 했다.
그리고 그 장기연애들의 마지막은
늘
은재의 바람이었다.
첫 번째 연애 때,
바람의 대상은
같은 학교 다른 과의 다섯 살 많은 동급생이었고,
그 당시 은재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잘생기진 않았었는데,
왠지 모르게 관심이 가서
은재는 계속 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나중엔 밥을 먹자고 하기도 하고,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기에
데려가 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의 자취방에 같이 있는데
당시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은재는 그때 남자의 촉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남자친구는 은재가 수상하다는 것을 알고
재수 학원에서부터
은재의 대학교까지 택시를 타고 왔다.
하지만 금방 들키지 않았는데,
(들키지 않기 위해 은재가 얼마나 애썼는지는 알만 하다)
당시 남자친구가
은재의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걸렸다.
그리고 우리는 금방 카페에서 나와서
헤어질 뻔 했는데
오히려 헤어지자고 한 것은 은재였고,
붙잡은 것은 당시 남자친구였다.
은재가 오히려 더 뻔뻔하게 헤어지자고 했던 이유는
재수 학원에 들어간 당시 남자친구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그 남자가 더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두 번째 연애 때,
바람의 대상은 어플로 만난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남자였고,
그 당시 은재의 나이는 스물둘이었다.
오토바이를 타던 남자였는데,
그 남자는 은재에게
이름도 제대로 알려준 적이 없었다.
그런 남자가 뭐가 좋았는지
아니,
분명 쎄하다는 것을 느꼈는데도
은재는 타고난 의존성 때문에
그 남자를 찾아갔다.
아주 작은 자취방에서
아주 허름한 모텔로 들어갔는데,
새벽부터 반나절을 시간을 보냈을 때즘
군대에 있던 당시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왔었다.
이때도 남자의 촉을 은재는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남자와의 만남은
만남을 이어갔을 때 들킨 게 아니라
한참이 지나서 당시 남자친구가 은재의 휴대폰 보고 들키게 되었는데,
당시 여행을 하던 중이라
헤어질 수 없었고,
시간이 좀 지나서 헤어지게 되었고,
이 문제가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세번 째 연애 때,
바람의 상대는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친구의 친구였는데,
그 당시 은재의 나이는 스물넷이었다.
그때 은재는
당시 남자친구와 그 남자를 일일히 비교했다.
그리고 이렇게 판단을 내렸는데,
당시 남자친구는 매우 불안정하고,
그 남자는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남자가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나한테 오면
너 불안하게 하지 않을게.
그 말에 동해서 은재는
당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그 남자를 잠깐 만났었다.
아,
그러고 보니 첫 번째 바람을 피웠던 남자와도
아주 잠깐 만났었다.
(두 번째 외도를 했던 남자는 스토킹범이었다)
하지만 정말 잠깐이었다.
뭐, 대개 바람 핀 커플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물론 그렇게 빨리 헤어지게 되는 이유는 하등 많겠지만,
은재의 경험 상 이런 이유였다.
그건 바로
바람을 피우게 되면
당시 남자친구와 그 사람을 비교하게 되는데,
그가 나아보이는 것은 절대적으로 그가 잘나서가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상대적인 것은
당시 남자친구의 부재와 동시에 빛을 잃게 된다.
그래서 금방 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매달리는 것이다.
(실제로 은재는 처음 만난 남자친구를 3개월 뒤에 7개월이나 붙잡았다)
은재의 경우엔 그랬다.
그리고 은재는
그걸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뭐,
의존성 우울증이나 자해적 그것이 원인이 될 수 있겠고,
어쩌면 은재 자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바람은 피운 사람만 피운다잖아요?)
그럼에도 은재는
지금 흔들리는 사람에게 지금 만나는 사람과 헤어지지도 않고
애매하게 굴면 좋지 않다는 말을
꼰대처럼 하고 싶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바람을 추천?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자신에게 오는 데미지가 크니까.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좌절과 후회,
태풍처럼 불어오는 자해적 상상과 자책,
그리고 은밀하게 이어지는 사람들의 뒷담화..
그리고 바람을 피우는 당시에 느끼는 죄책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망가진 관계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앞에서 본 것과 같이
은재는 한 번도 재회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는데도.
그러니
바람을 피우겠다면 헤어지고 만나시길.
그게 자신을 위해서도,
관계를 위해서도 좋으니까요.
이상 바람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