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연가는 아니고 습관성 흡연자
스물한 살이던 은재는
그해 봄인가 가을에
처음으로
담배를 피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잘 알지 못해
줄곧 담배를 피우던 사람에게
배웠는데,
그 당시는 담배가 입에 맞지 않아
피우다, 말다 했었다.
물론 상식적으로
담배가 입에 맞지 않았다면
안 피우는 게 맞지만
은재는 가방에 늘 담배를 넣어다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은재가
담배를 피우고자 했던 것은
<자해에 대하여>에서 자해를 했던 몇 가지 이유 중 하나와
동일하게
내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러니까 '패션 흡연'이라고 할까?
그리고 스물셋이 되던 새해에
은재는
아이유의 스물셋을 들으면서
담배를 피웠는데,
그 날부로 의지하게 되었다.
힘든 사람은 담배를 피워야 해.
그 생각이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당시 은재는 대학생이었으니
학교에서도 담배를 피웠는데,
대학교 흡연 공간에
여자가 거의 없었고
그게 일종의 자극이 되기도 했었다.
(내가 왠지 사연 있는 여자인 것처럼 보였거든)
이런 점에서 여전히
패션 흡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지만
그때는 피다, 말다 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피웠다.
그때와 그때의 다른 점을 생각해보면
이후에 은재가 꾸준히 담배를 피웠던 것은
담배를 피운 뒤에 왠지 모르게
가슴 한 켠이 편안해짐을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게 니코틴의 효과인지,
아니면 오랜 한숨을 쉬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은재는 차례로
이모에게,
엄마에게,
아빠에게,
흡연 사실을 들키게 되었다.
들킨 이후에는
흡연을 참는 게 아니라
무법자처럼 담배를 피웠다.
집에서뿐만 아니라
가족끼리 외출을 나갈 때도
'해피 타임'이라는 명목 하에 무리를 벗어나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가끔은
집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물론 지금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은재는 당연히 엄마로부터
비난을 받았는데
아빠로부터는 그 어떤 소리도 듣지 않아서
흡연을 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은재는 왠지 아빠의 혼냄이 비교적 더 진지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불쑥
은재는 담배를 끊었다.
한 7-8개월 정도 되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완벽히 끊은 줄 알았는데.
흡연자인 애인을 만나면서,
하지만 그것보다는 더 많은 이유들로
(물론 고질적으로 힘든 사람은 담배를 피워야 해, 라는 생각은 있었을 것이다)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지금 은재는 눈을 뜨자마자,
밥을 먹고 나면,
하나의 일을 헤치우고 나면,
대화의 공백이 이어질 때,
담배를 피워야 하는
중독 상태에 있다.
게다가 ADHD의 충동성으로
전보다
담배를 피우는 때가 잦아졌다.
하지만 전과 다른 점은,
되도록 흡연 사실을 숨기고자 한다는 것이다.
분명 처음 담배를 피웠을 때는
나의 증세를 알아줬으면 싶은 마음도 있었고,
모두가 알고 있어야
자유롭게 담배를 피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기엔
더 이상 패션 흡연이 아니었고,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냐고 묻는 말에
되도록 안 피운다고 말하면서
흡연 충동을 참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 은재의 엄마와 아빠는
은재가 그때 담배를 끊고서 다시 피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고 싶다.
물론 그렇게 믿기엔
은재가 너무 덜렁대지만.
(가끔 은재는 담배 기계를 방에 버젓히 두고 나온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심증은 있지만,
아니, 물증도 간혹 있지만,
다들 쉬쉬 하는 중이다.
그러니 은재도 노력하는 중이다.
전자담배 기계도 사고,
연초는 여행 갈 때가 아니면 되도록 삼가한다.
너무 간단한 노력이지만?
그리고 불현듯 은재는 그런 생각을 했다.
우울증을 앓는 것도 불효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부가적인 불효를 할 필요가 있나?
아니,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끊기엔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한다.
이제 정말
눈을 뜨자마자 담배를 찾고 있으니까.
심지어 은재는 입원을 하고도
아픈 게 달아나자마자 담배를 피웠다.
그게 가장 먼저 하고 싶었다.
이제 정말 난감한 상태인 것이다.
은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쌀랑한 바람을 맞으며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아, 이제 다른 불효는 저지르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특히나
엄마나 아빠가
친구들에게 그들의 자녀에 대한 자랑을 듣고 오면
더욱 그렇게 생각하고 다짐한다.
사실 부모에게 가장 큰 낙은
자식 자랑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지금 은재는
가난하기까지 하니까.
은재는 마지막 한 모금을 뱉어내며
뱉어내는데도 가슴이 묵직한 것을 느끼면서
자신이 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정말 부모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것밖에 없다고.
-
물론 아빠는 다 알고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