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편히 사는 연습
"대가리 꽃밭으로 살겠어."
습관적인 무기력으로 누워있던 어느 날. 간신히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한 뒤 혼잣말을 뱉었다.
대가리에 꽃만 채워 살겠다. 남들 눈에 멍청하게 보일지라도 그냥 밝고 맑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어 올라 다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걱정 같은 거 집어치우고, 후회 따위 가뿐히 무시해 버리고 그렇게 얼렁뚱땅 되는대로 살겠다.
이것은 이제껏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나의 새로운 목표.
과거에는 싫어했던 부류의 인간 유형이다. 세상이 티끌하나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해맑게 웃는 애. 대책 없이 잘 될 거라 염불을 외는 철딱서니 없는 애. 자신을 무슨 삼류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여겨 다가오는 고난과 역경을 하나의 에피소드쯤으로 여기는 애.
그런 애들을 보고 있자면 불쾌했다. 쟤는 뭔데 저렇게 나대. 나에게 피해 주는 게 없음에도 그들의 해사한 미소를 보면 화가 나 그들을 쉽게 철없는 사람 취급했다. 마치 길거리의 부랑자를 보듯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조소를 보내며 현재에도 추후에도 나는 너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아무 근거도 없이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철없는 건 바로 나 자신이었고, 그토록 귀하게 품었던 건 단지 텅 빈 비관주의에 불과했다. 보석인 줄로만 알았는데 모양만 그럴싸한 무거운 추였다. 그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럼에도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 지난날의 나를 부정하는 것 같아서. 그동안 헛살았다고 인정하는 것 같아서. 사실은 내가 그들보다 못났기에 그들을 질투했다는 걸 공표하는 것 같아서.
그 마음으로 계속 까맣고 커다란 믿음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뛰노는 이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이 넘어지기를, 다치기를, 그래서 역시 앉아있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랬다.
여전히 나는 앉아있다. 그들의 체력이 점점 좋아지고,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상처가 아무는 동안 나는 -. 그 모습 그대로다. 아니구나, 나도 변했다. 지금의 나는 앉아있는 것조차 벅차고 지친다.
그러니 이제는 내려놓으려 한다. 설령 그동안 정말로 내가 세상을 제대로 보고 이해하고 있었다 한들 의미 없고 필요 없다. 과거가 아깝다고 미래마저 버리는 멍청한 짓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 거기까지 다짐을 하고 나니 어차피 대가리에 버리기 아까울 만큼 좋은 것이 심어져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 뽑아버리고 꽃으로 가득 채우겠어. 사람은 꽃이 쓸모없다고 말하면서도 꽃이 잔뜩 피는 곳으로 여행을 가고 사진을 찍는 이상한 족속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