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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시 Nov 16. 2023

겨울



애처로운 가을이 떠나던 날이에요. 푸르던 여름의 끝과 흠뻑 젖은 가을비 속 온몸을 비틀며 인사하던 것들이 숨죽여 자살하던 날. 노랗게 물든 거리를 거닐며 발 끝 아래에 바스러진 것들을 추모했어요. 더는 이 노랗고 발간 것들이 숨을 쉬진 못하겠지만 또 한 계절 무사히 지나간 것에 대한 작은 소회와 안도를 떠올립니다. 이제 찾아올 겨울을 두 팔 벌려 한아름 안아 들고 코 끝에 맴도는 겨울향기는 부디 조금 더 오래 머물길 바라며.


겨울 하면 떠오르는 그녀를 생각해요. 그녀는 여전히 겨울을 사랑하지만, 어느새 당신은 내겐 입춘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어요.  밤그늘 아래 걸터앉아 보내었던 함께 지낸 밤을 새우다 잠들까 해요. 마른눈이 소복이 쌓인 언덕 아래 누워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할까요. 지나간 계절을 따라 찾아올 봄과 여름을 기다립니다. 그렇게 우리는 돌고 돌아 또 서로를 그릴테니까요. 단어로, 문장으로, 계절로, 사랑으로


우리는 여전히 어리고 생채기 많은 사람들이라, 어설프게 서로의 얼굴을 문대고, 위로하고 그리워하고. 그러다 빈자리에 남아 따스했던 온기를 안고선 엉엉 울겠지만. 그렇게 그것이 사랑인지 모르고 뒤늦게 당신을 사랑하겠죠.


어느덧 겨울이네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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