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이 제일 먼저 접하는 구매자료, 회사 규정
CPSM이 알려주는 구매 부서 적응 비법(06)
오랜만에 K로부터 전화가 왔다. 발령 후 2주 만이다. 입사 후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고 한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신입사원이라 모든 일들이 처음이었을 게다. 더구나 구매팀 업무들이 워낙 다이내믹(dynamic)해서 하루하루가 화살처럼 지나갔을 것이 틀림없다. 구매업무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다양하다. 단순히 물건만 사는 것이 아니다. 구매관리만 보더라도 원부자재 담당과 시설재 담당으로 나뉜다. 원부자재 담당자도 회사에 따라서 품목별 또는 신청팀별로 다시 쪼개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조달에 집중하면서 현장과 밀접하게 관련된 자재관리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재고관리와 협력업체 관리, 불용자재의 처분, 수출입 통관 등 너무나 많다. 그리고 이 모든 업무를 설계하고 조율하는 구매기획이 있다. 과연 K는 어떤 업무를 맡았을까?
“그런데 맡게 된 보직은 뭐예요. 설마 신입한테 당장 구매를 맡기지는 않았을 텐데”
“맞아요. 팀장님. 아직 보직은 없어요. 한 달 정도 OJT(On the Job training) 개념으로 구매팀과 관련된 전반적인 사항을 배우고 있어요. 출근 첫날부터 엄청 큰 책자들을 던져주면서 읽어보라고 하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이번 주까지는 그랬고요. 다음 주부터는 현장을 돌면서 직접 눈으로 자재나 공정을 보는 것으로 계획이 되어 있어요.”
맞다. 첫 출근을 하게 되면 제일 먼저 마주하게 되는 책자가 있다. 바로 구매관리규정이다. 구매 업무와 관련된 사규와 요령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누구라도 현장의 경험 없이 구매 규정집을 접하게 되면 무슨 소리인지 진짜 이해하기가 힘들다(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신입사원에게 정독을 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략적인 감이라도 잡아보라는 취지다. 신입사원이 이제 갓 들어와서 규정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조직 입장에서 그 정도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실무에 임하기 전에 기본적인 규정이라도 알아두라는 의미다. 어디에 어떤 규정이 있다는 것만 기억해도 성공이다. 물론 그 이상 알면 더할 나위 없다.
구매관리 규정에는 구매, 자재, 재고, 불용자재 관리 등에 관한 주요 지침이 기록되어 있다. 이른바 구매업무에 관한 헌법이다. 이는 구매에 관한 업무절차와 처리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구매업무의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 필요하다. 여기에 규정된 내용과 다르게 업무를 처리하면 담당자에게 불이익이 생긴다. 따라서 구매담당자는 관련 규정을 항상 준수하고 위반하지 않도록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각 영역별로 핵심사항만 살펴보자.
구매요청
제○조 : 요청팀은 구매요청 시에 소요시기, 용도, 규격, 품목코드 등 구매에 필요한 자료를 상세히 기록 또는 첨부하여 전산(ERP)으로 소요 제기함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발주, 제조, 검수 등에 필요한 소요기간을 감안하여 불용자재 발생 방지 및 긴급구매로 발생되는 가격 상승 및 공정상의 차질이 없도록 적기에 요청한다.
제○조 : 구매담당자는 제출된 구매요청서에 대해 필수 기재사항 입력 여부 및 재고 전용 가능 유무, 구매방법의 적정성을 검토하여 수정이나 보완 여부를 확인한다. 필요시 구매요청서를 반송하여 보충자료나 내용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
구매 결의
제○조 : 구매 결정은 복수업체 일반경쟁을 통한 최저가 선정 방식으로 한다. 복수업체가 제시한 견적 가격이 동일한 경우, 협력회사 평가등급 상위 업체를 선정한다. 단, 복수업체가 신규 거래인 경우에는 再견적을 통해 최저가 업체를 선정할 수 있다.
제○조 : 구매담당자는 구매 결의서를 작성하고 전결권자의 결재를 득한 후 발주해야 하다. 독점 공급 및 납기관리 등 특별한 사유 발생 시, 별도의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다.
제○조 : 구매와 관련된 제반 업무는 전산(ERP) 처리를 원칙으로 한다.
납기관리
제○조 : 구매 및 자재 담당자는 발주 품목의 조기 입고 및 납기지연 방지를 위하여 공급업체 납기관리에 힘써야 한다. 납기 미준수가 예상되는 경우, 유관부서와 협의하여 생산일정 및 개발계획 변경 발의 등 필요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제○조 : 납기는 발주서 또는 계약서에 기재된 일자로 한다.
물품 검수
제○조 : 입고 물품에 대한 외관 및 수량 검수는 구매팀(또는 자재팀)이 실시한다.
제○조 : 품질검수는 납품 규격서, 사양 및 설계서를 입고 물품과 대조하여 합격여부를 품질보증팀이 판정한다.
제○조 : 수량 또는 품질검수 결과, 외관·수량·규격·상태·성능 등에 이상이 있을 경우에는 부적합품 처리 절차에 따라 처리한다.
입고와 출고
제○조 : 입고 물품은 자재창고에 입고하거나 자재창고를 경유하여 사용하여야 한다. 다만 액상 원료 등 보관용기 및 특정 창고가 생산현장에 위치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
제○조 : 출고는 현장 출고와 사외 출고로 구분하며 사외 출고는 불량 교체, 사급자재 출고 등으로 분류한다.
재고관리
제○조 : 구매팀은 자재의 특성에 따라 수요의 빈도, 자재의 중요성, 경제적 구매량, 조달기간 및 난이도를 감안하여 적정한 재고 수준을 설정하여 운영하여야 한다.
제○조 : 보관 자재에 대해서는 재고조사를 실시하여 실물 수량과 전산재고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고 자재의 보관 상태를 점검하여야 한다.
제○조 : 재고조사는 연 1회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불용자재 관리
제○조 : 구매팀은 생산계획 및 개발 일정의 변경 등으로 인하여 불용자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관부서와 긴밀히 협조하여야 한다.
제○조 : 불용자재가 발생할 경우, 구매팀은 불용자재를 적기에 전용, 매각, 폐기 등의 방법으로 처리하여 재고비용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모든 구매업무는 앞서 설명한 여러 가지 구매관리 규정을 근거로 집행된다. 또한 이러한 구매관리 규정을 포괄한 회사의 구매정책(Purchasing Policy)을 구매방침이라고 한다. 이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경영 이념이나 비전을 반영하여, 중장기 또는 연도별 경영정책 등의 형태로 구매에 관한 활동지침을 정해 놓은 것이다. 따라서 구매관리 규정은 구매방침을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열해 놓은 것이다. 구입할 품목, 규격, 수량, 계약방법, 공급처의 선택 기준 등 구체적인 구매방법을 세분화해 놓은 구매 활동지침이다. 그렇다면 활동지침을 기반으로 구매팀에서 이루어지는 주요 업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음은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의 구매에 관한 주요 행사 일정이다.
01월 전년도 실적 및 성과지표 분석
02월 재고 실사
- 외부업체에 보관 중인 임대 자재 및 사급자재 포함
03월 단가계약 갱신
- 정기 소모품 및 안전보호 구류 대상
04월 구매 요청자 교육 실시
- 생산팀, 개발팀, 지원팀 소속 신입사원 및 희망자
05월 주요 협력업체 현장방문
- 이슈사항 및 애로사항 협의
06월 구매/자재 세미나 실시
- 신규업체 또는 개발 자재 위주(자체 또는 전문업체 초빙)
07월 상반기 실적 및 하반기 수정 계획 작성
08월 하계휴가
09월 협력업체 평가 진행
- 주요 1차 협력사 80여 개 사
10월 불용자재 처분위원회 개최
- 불용자재 처리방법(매각, 폐기, 전용) 결정
11월 협력업체 간담회
- 평가 결과, 우수업체 포상 실시
12월 내년도 구매/자재 계획 수립
- 구매단가 기준정보 및 입고 계획 작성
통화 시간이 제법 길어졌다. 간단하게 설명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전달은 제대로 되었을까? 그래도 K는 잘 해낼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K는 그렇다. 문제는 나와 약속한 기간 내에 전반적인 구매 직무를 모두 경험해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K에게는 또 다른 꿈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하세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갈수록 힘들어져요. 무슨 말인지 아셨지요?”
“물론이지요. 팀장님. 최선을 다해 볼 생각입니다. 나중에 후회라도 없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