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은 내가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많이 듣던 말 중 하나이고 간혹 여행 중 나와 같은 장기간 여행자를 만날 때면, 반대로 내가 그들에게 던지던 질문이기도 하다.
개개인마다의 사소한 차이는 있지만 여행자들이 말하는 여행을 왜 하는가에 대한 이유는 국적을 불문하고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그들의 이유를 종합해보면 크게 두 가지 방식의 답변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또는 우연이든 필연이 든 간에 최초에 여행을 왜 떠나게 된 건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가 첫 번째이고, 그렇게 시작한 또는 시작되어진 여행 중 직접 경험한 새로운 문화, 사람, 음식, 자연 등을 바탕으로 여행을 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재해석하고 개인적인 견해를 덧붙인 대답이 두 번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너무 궁금했어요” “여행은 저에게 있어서 하나의 도전이에요” “저는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를 경험하는 것을 좋아해요, 세상은 정말 다양하고 놀랍죠” “자유를 찾아 떠난 거예요”
나도 마찬가지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의 예시와 같은 대답을 하고 이는 대부분 두 번째 방식의 답변에 가깝다. 이실직고하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저런 식으로 말한 데에는 남들에게 나를 더 멋지게 돋보이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이유들이 가식적이라거나 거짓이라는 건 절대 아니다. 처음부터 저러한 이유를 가지고 떠난 여행자들도 분명 있으며, 단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먼저 집을 떠나고 나서야 여행의 이유를 끄집어낼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을 뿐이다.
저 당시로 돌아가 내가 세계를 여행 중일 때엔 여행을 왜 하는지에 대한 나와 그들의 대답 방식이 어디에 속해있는지 구분 지을 필요도 없었고 그것에 관해 깊게 대화하지도 않았다. 그저 어쩌다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누고 호스텔 로비 카우치에서 맥주를 마시며 나누던 대화의 한 주제였을 뿐이다.
모든 여행은 끝나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게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여행을 아무리 길게 했다 한들 결국은 그게 끝나고 나서야 보이는 게 있다.
나에겐 여행의 이유가 그중 하나였다.
여행을 하고 싶어서 하는 거지 왜 사소하게 그에 대한 이유를 묻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행이 끝나고 나니 문뜩 태초에 내가 왜 떠났을까, 무엇이 나를 떠나도록 만들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그 의문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과거 내가 다른 여행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말해왔던 이유는 전부 여행 중에 만들어낸 것들이 라는걸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그게 잘못되고 위선적이라는 건 아니다. 사람은 변화와 시련 그리고 기쁨과 슬픔을 통해 성장하고 여행은 이들의 집약체이다. 과정을 통해 결과가 변하는 건 당연했다.
나는 단지 여행 중에 내내 망각하고 있었던 내 안의 무엇이 나를 여행으로 인도했는가가 궁금했다.
나아가 세상의 모든 여행자들 또한 제마다 여행을 하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그러한 이유들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최초에 무엇이 우리를 떠나게 만들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나는 여행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나 자신과 내가 여행 중 만난 국적과 나이를 불문한 친구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처음엔 두 번째 방식의 답변을 하던 이들이 질문이 점차 깊어짐에 따라 기억을 되짚느라 애를 썼다. 그 결과
놀랍게도 의외로 많은 이들이 처음엔 의외로 단순하고 우연적인 것들에 의해 영감을 받아 떠나거나 , 혹은 그로 인해 여행에 대한 꿈과 동기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 적 봤던 영화 혹은 책, 여행을 좋아하는 부모님, 해외로 떠난 유학 또는 출장, 집과 가까운 공항, 여행지에서 사 온 친구의 선물, 가까운 이웃나라와 가기 쉬운 환경, 여행을 자주 가는 이웃, 친한 친구의 설득 등의 이유들이 있는가 하면 나의 근본적 이유이기도 한 현실 도피와 사회에 대한 회의감 같은 어두운 이유들도 있었다.
하지만, 저것만으로는 한 가지 쉽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저러한 상황이나 환경을 가진 이들은 많지만 정작 떠나는 이들은 따로 있다. 단순히 이유만으로는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기엔 부족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