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부딪힌다는 건 비단 물리적인 충돌에만 쓰는 표현이 아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는 항상 순탄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만은 없다는 걸 깨닫는다. 행복의 이면에는 불행이 존재하고 순항의 이면에는 암초가 존재한다. 행복이 크면 클수록 그 옆에 보이지 않게 바짝 추격하고 있는 불행이라는 존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바다를 순항하고 있을 때일수록 언제 튀어나올 줄 모르는 수면 아래의 암초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그러나 인생은 결코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을뿐더러 항상 순탄하지만도 않다.
삶은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가 아니라 그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있다.
겁먹지 말고 일단 부딪혀 봐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그것을 정복할 수 있다.
큰 구조로 볼 때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면 그다음 단계는 떠나는 것이지만 그 둘 사이에는 계획이라 불리는, 어쩌면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불안감과 설레는 비전을 원천으로 하는 단계가 존재한다.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추상적인 목표를 세우고 나서 우리가 가장 먼저 현실에서 부딪히는 실체가 되는 것이 계획이기도 하다.
누구나 무지의 상태에서 그것도 독자적으로 계획을 세우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한다. 나 또한 그랬다. 이미 세계 여행을 결심하고 가족들과 주위 지인들에게 떠나겠다고 선언까지 한 후라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었다.
때로는 무언가 꼭 해야만 할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미루거나 포기하지 않고 한시라도 빨리 실천하려면 그것을 하겠다고 먼저 주위에 떠벌려라, 만약 당신이 주변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동시에 베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행위는 무엇보다도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막막한 심정으로 컴퓨터를 켰다. 인터넷에서 구글 지도를 접속하니 대한민국의 중서부에 위치한 도시 대전의 어느 아파트 위에 나의 현재 위치를 나타내는 포인트 도트가 보였다. 마우스로 지도를 축소해보니 세계에서 가장 넓은 바다인 태평양을 오른쪽에 끼고, 세계에서 가장 큰 대륙인 아시아를 왼쪽에 낀 동북아시아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 보였다. 문제는 도대체 여기에서 어디로 첫발을 내딛느냐 였다. 누구와 상의해볼 수도 없던 나는 지도를 끄고 다른 여행자들의 여행 루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우리는 지금 여행을 하기 가장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운송수단의 발달로 세계 어느 곳이던 갈 수 있고 인터넷의 보편화로 지구 상 어느 나라를 가던 원하는 정보를 마음껏 찾아볼 수 있다. 나아가 스마트폰의 등장은 여행 산업에 엄청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정보와 기술의 발전으로 어제보단 오늘이 오늘보단 내일이 여행을 하기에 있어서는 더 최적기인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모두 선구자들이 앞서 개척해놓은 길을 뒤 따라가는 것이다. 그것도 그들 덕분에 아주 편하게 말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그곳으로 통하는 지도가 나올 수 있었고 나아가 그곳이 위험한지, 날씨와 기후는 어떤지, 볼거리와 먹거리는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들을 미리 수집할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갔다고 해서 남들이 하지 않는 여행을 했다고 해서 결코 자만하면 안 된다 우리 모두는 결국 어느 누군가의 후발대이다.
어쨌든, 인터넷에는 나보다 먼저 세계일주를 한 여행자들에 대한 정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의 루트나 경비 그리고 여행지에 대한 정보들이 줄을 이었는데 나는 그런 자료들을 보고 있자니 대단하다는 존경심과 함께 남의 여행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것에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의 여행 루트 또한 동분서주하게 개인별로 상이하였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여행엔 정답이 없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혼자 떠나는 여행이고 내가 하고 싶은데로 다 할 수 있는데 굳이 남이 짠 루트를 그대로 따라야만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집안 어딘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지구본을 찾아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지구본을 돌려가며 나의 첫 여행 계획인 세계일주 루트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