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이 있다. 무소식이 희소식, 무자식이 상팔자.
그렇다면 무계획은?
여행을 떠나기 전, 앞으로 다가올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사람을 두근거리게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다. 반대로 여행 전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처럼 불안감을 유발하는 것도 드물다.
나는 여행 전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루트를 먼저 세웠다. 내 목표는 남극과 북극을 제외한 6개 대륙을 전부다 가보는 것이었다. 시간적인 제한은 없었지만 되도록 6개월에서 1년 안에 끝을 내고 싶었다. 세상이 얼마나 넓고 복잡한 줄 몰랐고 1년이면 웬만한 곳들은 다 가 볼 수 있다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찍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2020년 현재 전 세계에는 UN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국가수가 193개이다.
세계일주를 계획한 나에게 그 193개의 나라들은 마치 뷔페 레스토랑에 차려진 하나하나의 음식들처럼 보였다.
우리는 뷔페에 가면 눈앞에 차려진 수많은 음식들에 매료되어 정작 음식 하나하나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되도록 많은 음식을 맛보고 싶어 하는 욕심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과, 개인이 먹을 수 있는 양에는 한계가 있고 먹어야 할 음식은 많으니 이것저것 가볍게 시식하는 정도로 끝을 낸다. 물론 우연히 자기 입맛에 맞는 메뉴를 찾으면 그것에 대한 시식은 길어지지만 결국은 아직 맛보지 못한 다른 음식으로 포커스가 다시 맞춰진다.
나는 앞으로 여행할 처음 몇몇 나라들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세계일주라는 목표를 가진 이에게 하나의 나라는 뷔페에 차려진 수많은 음식들 중 하나와 같았다. 나라 하나에 집중을 하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나라를 가보자 다시 말해 최대한 많은 종류의 음식을 먹어보자라고 생각한 거나 다름없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여행을 시작한 지 20일 만에 5개국을 여행했다.
그러다가 8번째 나라인 라오스를 여행할 무렵 한 여행자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보통 여행자들의 대화가 늘 그렇듯 어디를 여행했고, 얼마나 여행했고에 대한 형식적인 말들이 오고 갔다. 그러다 그가 나에게 “이봐 너는 세계 여행자라면서 왜 이렇게 급하게 여행하는 거야?” 하고 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리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빠르게 움직이던 나였다.
처음 7개국을 여행할 동안은 짧은 기간이었기에 미리 계획한 대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그 이후의 나라들에 대한 계획은 앞으로 여행 중에 세워야 할 시점에서 그런 질문을 받은 것이다.
“그럼 너는 어떻게 여행하는데?” 내가 물었다.
“나는 천천히 여행을 해, 그렇기 때문에 계획이 없어”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계획이 없다니... 그럼 계획 없이 어떻게 여행하는 거야? 내가 다시물 었다.
“그냥, 흘러가는 데로, 내가 좋으면 좋으니깐 더 있고 그러다 싫증이 나면 떠나면 되는 거지, 이건 내 여행이잔아!”
나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 여행 방식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릴 적부터 우리 가족을 포함한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여행을 짧게 계획을 했고 나는 그런 여행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사실, 그때 당시의 나로 돌아가 지난 7개국의 여행을 되돌아보면 의무적으로 너무 빨리 여행하느라 기억에 남는 게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여권에 찍힌 각 나라별 도장과 카메라 속 사진 몇 장만이 전부였다. 그 당시 나에게 여행은 그저 시작했으니 해야 하는 그리고 이왕 해야 하니 신속히 그리고 남들처럼만 하자였다.
그 와의 만남 이후 나는 나 자신의 여행을 돌아볼 시간을 가졌다.
생각해 보니 급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여행자들과 똑같이 갈 필요도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그리고 하고 있는 이 여행이 과연 옳은 건지와 여행을 하며 나는 행복한지에 대한 의문심이 들기 시작했다.
색다른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것은 바로 편견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리는 것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나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지나친 계획이야 말로 여행자를 옭아매는 족쇄라고 말이다. 계획을 잠시 내려놓고 관광지에서 벗어나 하루하루를 내가 하고 싶은 것들 하며 여유로이 만끽했다.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마음이 편안해지며 여행이 더 큰 재미로 다가왔다.
알고 보니 세계일주는 뷔페가 아니라 음식 하나하나를 순서대로 음미하며 먹어야 하는 코스요리였고, 무계획이야 말로 상 계획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