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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계산대 너머, 끝나지 않은 이야기

흔들림 속에서 단단해진 시간

by 지화


묻고 싶다. 젊은이들이 과연 이런 일들을 몇 번이나 겪으며 살아가는 걸까. 나는 10대의 끝자락부터 20대 대부분을 그 반복 속에서 보냈다. 쓰러지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끝없이 되풀이했다. 지쳤지만, 동시에 단단해지는 과정이었다.

가족이 있던 시골에서 시작한 나는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았다. 또래들이 대학을 준비할 때도, 캠퍼스에서 청춘을 즐길 때도,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나의 처음과 끝은 늘 그 카운터 앞이었다. 손님을 맞이하고, 진열을 정리하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그 안에서 흉기 난동을 겪었고, 술 취한 손님들의 욕설과 성적인 농담도 견뎌야 했으며, 원치 않는 신체적 접촉을 겪기도 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날도 있었고, 고소장을 쓰거나 노동청에 가서 절차를 밟았던 기억도 여전히 선명하다. 떠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고 실제로 떠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익숙함과 무력함 속에서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왔고, 결국 20대 대부분을 그 공간에서 채워야 했다.

그렇다고 모든 게 어둡지만은 않았다. 나를 걱정하며 도움을 건네던 사람들, 카운터 너머에서 오간 짧은 대화, 손님들이 내밀던 간식과 작은 선물, 동료들과 웃으며 나눴던 순간들이 하루를 붙잡아 주었다. 그렇게 이어진 작은 인연들이 쌓이며, 나는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남은 건 상처만은 아니었다. 그 시간들은 훗날 나를 다시 공부로 이끌었고, 부당함에 맞서야 했던 경험들은 헌법이라는 길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부족한 삶이지만, 이렇게 쓰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내 존재를 증명한다. 그 앞에서 겪은 흔들림과 버팀, 그리고 남겨진 인연들은 끝나지 않은 채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는 계산대를 떠나 또 다른 자리에 선다. 낯설지만 피할 수 없었던 곳, 여전히 사람들 앞에 서서 상대를 마주한다. 눈을 맞추고 말을 건네고, 반응을 견뎌내는 일은 여전히 내 삶 속에 남아 있다. 어쩌면 적성 같기도 하고, 체질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기록하며 살아가려 한다. 그 기록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계산대 너머에서 배운 버팀과 인연은 앞으로의 자리에서도 내 발걸음을 지탱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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