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 되어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어느 날, 남자아이가 킥보드를 타고 마트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위험하니까 타지 말라고 주의를 줬는데, 아이 엄마가 "우리 애 운전 잘하는데요?"라고 말해서 어이가 없었다. 다시 한번 정중하게 안전을 위해서 타지 말라고 말했지만, 그 뒤로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계산하는 내내 중얼중얼 욕을 하더니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날의 두 번째 에피소드는 단골손님 이야기다. 유치원을 다니는 여자아이인데, 그날도 평소처럼 웃으면서 나랑 인사하다가 애가 갑자기 울먹거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곁에 있던 엄마가 놀라서 애한테 "너 왜 그래?"라고 묻고는 나한테 사과하면서 황급히 애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그러고 다시 계산하러 왔는데, 애가 울먹거리면서 엄마 뒤로 숨었다. 아이 엄마가 나한테 계속 사과했다. 아이가 좀 유별나다고 예전에 이야기한 적은 있는데, 나한테 그런 적은 없었다.
무서운 건, 아이가 나를 보면서 울먹인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내 뒤를 보면서 울먹거렸다는 거다. 꼭 내 뒤에 뭔가를 본 것처럼. 그 순간 내 어릴 적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어릴 때 귀신이라고 하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것들을 종종 봐서 어른들한테 거짓말한다고 혼난 적이 있다. 그때 내 모습이 겹쳐 보여서 소름이 돋았다. 원래 아이는 영이 맑아서 그런 것들을 본다고 들은 적이 있다. 아마 이 아이도 그런 것 같은데.
이날은 혹시 몰라서 퇴근길에 근처 대형마트에 들러 시간을 좀 보내다 집에 와서 소금이라도 뿌리려고 했는데, 마침 집에 소금이 떨어져서 그래서 그냥 소금이 들어간 라면을 먹었다. 다행히 그 뒤로 별일은 없어서 안심은 했다. 그날 그 아이는 무엇을 본 걸까?
우리 마트는 단골손님이 많다. 이날은 50대에서 60대 정도 되는 단골 중년남성 고객님이 오셨다. 이분은 항상 따님의 핸드폰 뒷자리 번호로 적립을 하셔서 기억해 두고 내가 먼저 입력해 드리면, 항상 똑똑하다면서 사법고시 보라고, 학생은 한 번에 합격할 거라면서 마치 단골 멘트처럼 말씀하시던 분이다.
그날은 구입하신 계란에 이상이 있어서 내가 고개 숙여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계란은 마트 사장님과 계란 납품하시는 분께 설명드리고,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리며 반품 및 교환 처리를 설명을 드리고 있었는데, 그분이 "책임을 왜 떠넘기냐? 판매한 네가 잘못했는데 왜 일을 이딴 식으로 처리하나?"라며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어쩔 줄 몰랐다. 결국 그렇게 환불을 받고는 두 번 다시 안 오겠다고 소리치고 가셨다. 그런데 며칠 뒤, 태연하게 다시 오셨다.
언니랑 사모님한테 이야기했는데, 그분이 우리 마트에서 구입한 계란에 문제가 있었던 게 벌써 4번째라고 했다. 운이 나쁜 건지, 마트 계란이 항상 그렇다고 느끼셨던 건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동안 쌓인 게 폭발하신 것 같다고들 했다. 이런 경우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뒤로 오실 때마다 어색한 공기는 어쩔 수가 없었다.
마트에서는 유치원, 학교, 회사, 복지시설 등에서 장부 작성을 요청받는다. 이건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개인 물품이나 유흥비에 그 돈을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내가 겪은 곳에서는 깨끗하게 쓰는 건 거의 보지를 못했다.
코로나19 시기였던 어느 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중년 남성 고객님이 "과일 계산하게 나와"라고 말했다. 나는 "마스크 쓰시고 과일 가지고 안으로 들어오세요. 계산해 드릴게요"라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그런데 손님은 한숨을 쉬며 "뭐라고?" 하고 되물었다. 다시 한번 같은 말을 반복하자, 아저씨는 "손님한테 말을 이쁘게 해야지. 말을 왜 그딴 식으로 하나?"며 목소리와 말투를 트집 잡기 시작했다.
나는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다시 말씀드렸지만, 큰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무시하고 있었는데 실장님이 와서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삼촌에게까지 화를 냈고, 급기야 폭행까지 했다. 나한테는 "씨발년", "미친년"이라며 쌍욕을 퍼부었다. 나도 결국 참지 못하고 "나는 잘못한 것 없으니까 쌍욕 하지 마세요"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아저씨는 더 심하게 난동을 부렸다. 결국 경찰이 왔다.
경찰이 도착해서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있는데, 아저씨는 경찰관의 말을 무시하고 폭행까지 저질렀다. 그래서 경찰에게 제압당했고, 순찰차에 안 타려고 머리를 차에 박으며 자해까지 시도했다. 그렇게 끌려갔다. 나랑 실장님은 차례대로 진술서를 쓰고 있었는데, 아저씨 일행의 말이 더 가관이었다.
"요즘에 마스크 쓰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래? 마스크 안 쓰고 다니는 사람이 더 많아. 거리 돌아다녀 봐."
그다음 날, 담당 조사관이 와서 CCTV를 조회했고, 나도 실장님도 다음 주에 경찰서에 출석해야 했다. 보복 가능성이 높아서 합의를 해줘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사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내가 지금까지 겪어 왔던 것처럼 똑같았다. "왜 일을 크게 만드냐. 그냥 고개 숙이고 사과하고 말지."
하지만, 왜 내가 앞날을 위해서까지 고개를 숙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일들이 반복이 될 때마다 나는 항상 다짐한다.
내가 사장이 되어서 운영을 하면 직원이든 아르바이트생이든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최적화된 근무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
내가 생각하는 ‘최적화된 근무 환경’이란 특별한 건 아니다. 누구나 말하는 기본적인 것들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화장실을 눈치 보지 않고 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식사는 거르지 않게 챙겨주는 것. 그리고 손님이 아닌 분에게 자신의 권리를 말할 수 있게, 내가 선이 되어주는 것. 정말 딱 그 정도다. 나는 항상 생각하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