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
또 다른 날은 근무 내내 물음표가 머리 위에 가득했던 날이었다. 진상 손님이라기보다는 물음표 손님들이 참 많았는데, 그중에서 제일 물음표였던 손님은 정정한 할아버지였다.
그분이 통장을 오픈된 상태로 보여주며 말했다.
“통장을 담보로 술 좀 구입하고 싶은데.”
나는 당연히 말문이 막혔다. 물음표와 함께 할 말을 잃었다. 할아버지가 이해하시기 쉽게 설명도 해봤지만, 그 자리에 계속 서서 되묻기만 하셨다.
“왜 안 되나고? 내가 신용이 안 가나? 내가 의심스러워서 그래?”
같은 말을 반복하며 10분 가까이 서 계셨다. 진짜 두통이 심했다. 주변에 있던 손님들이 엄청 쳐다봤다. 어떤 손님은 웃고 가고, 또 어떤 손님은 눈짓으로 나에게 “힘내요” 하고 가고. 나도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다가, 그제야 납득이 가신 건지 지치신 건지 모르겠지만 결국 돌아가셨다.
같이 일하는 분들이 전부 웃었다.
어느 날은 3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 손님을 내가 또 본 것 같아서 “아까도 오시지 않았나요?” 물었더니, “오늘만 세 번 왔어요”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이런 경우는 흔했다. 정작 사야 하는 물건을 계속 깜빡해서 오시는 분들이다. 하루에 네 번이나 오신 손님도 있었다.
내가 웃으면서 “아이고, 오늘은 이게 마지막이죠?” 하자, 손님은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저 계속 오고 싶어요. 언니 목소리가 너무 듣기 좋아서 계속 오고 싶어요.”
기분이 좋았다.
나는 내 목소리와 연관된 모든 게 장점이면서도 단점이었다. 호불호가 확실하게 나뉘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목소리 관련해서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냥 그런 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고, 안 좋은 일이 있어도 하늘까지 기분이 날아갔다.
어떤 날은 트로트 가수할 생각 없냐며, 목소리가 완전 트로트 가수 뺨친다고 말했다.
“내가 팬 1호 해줄 테니까 나가봐요.”
이렇게 칭찬하시던 어르신들도 있었다.
그런 날, 십 원짜리 동전을 무더기로 가져와 계산하는 손님이 있었다. 나는 계산해 드렸고, 그걸 지켜보던 중년 남성 손님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런 거 뉴스에서만 봤는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 와, 이런 사람이 진짜 있구나.”
내 대답은 이랬다.
“이런 분들 꽤 많아요. 그리고 바쁜 시간대 아니면 저희도 다 해주는 편이에요.”
나도 웃으며 말했다.
번외로, 내가 일하는 마트는 공병을 평일에만 받고 있고, 시간과 하루 수량이 제한되어 있다. 사실상 개수 제한은 무의미하지만, 퇴근 시간에는 암묵적으로 안 가지고 오시는 분위기였다. 다만 이 암묵적 룰을 지키지 않는 연령층이 분명히 있었다.
주 1회 이상은 공병과 씨름을 해야 했다.
한번은 저녁 퇴근 시간대에, 카트형 장바구니에 소주병을 70병 이상 탑처럼 쌓아오신 할머니 손님이 있었다. 덮개도 열려 있었고, 삼촌이 수량을 세다가 포기했다. 70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으니까. 평균적으로 노인분들이 가져오는 공병들은 심각하다. 업소용도 있고,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듯한 병도 많았다.
그리고 이 마트엔 노마스크 어르신들이 많았다.
한 번은 마스크 착용을 안내했더니 그냥 들어오셨고, 다시 안내하자 역정을 내며 당당하게 말했다.
“목소리도 큰 년이 말이 왜 이렇게 많아? 지랄하네.”
옆에 있던 손님들도 다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꿋꿋하게 다시 한 번 안내했고, 돌아온 말은 이랬다.
“아씨, 알았어 알아들었으니까 이제 그만해.”
계속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며, 나를 쌍년으로 몰아갔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잘못한 게 아닌데 왜 화를 내세요? 잘못은 지금 손님이 하셨잖아요.”
손님은 “갈 테니까, 빨리 계산이나 해.”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다.
노마스크 출입 손님은 꽤 많았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