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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마트에서의 하루, 그 끝

짧지만 선명했던 시간

by 지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속에서 크고 작은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는 수많은 표정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갔다. 계산대 너머에서 받은 웃음과 무례, 작은 선물과 따뜻한 말 한마디 속에서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사람들이 건네주던 간식이었다. 사랑스러운 아기천사 손님들은 늘 과자나 사탕을 내 손에 올려놓곤 했다. 마치 “이모, 오늘도 수고했어요” 하고 건네는 말 같았다. 단골 할머니는 오실 때마다 꼭 사탕이나 초콜릿을 내 손에 쥐여주셨다. 아이도, 어른도, 심지어 업체 사람들까지 늘 간식과 음식을 건네주곤 했다. 어느 날 단골 할아버지가 꽃 화분을 들고 와 “받아라, 선물이다” 하고 건넸을 땐, 무뚝뚝한 말투 뒤에 숨어 있던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 시절엔 정말 매일같이 선물을 받았다. 그때는 “내가 어디 가서 일을 해도 이만큼 걱정해 주고 사랑받진 못하겠지” 하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하루 종일 서 있던 다리가 퉁퉁 부어도, 계산대 옆에 놓인 간식이 그날의 버팀목이 되어 주곤 했다.

나도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다. 간호학과에 다니던 남학생 손님과는 올 때마다 짧게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어느 날 시험 기간이라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다. 마침 카운터에 간식이 있어서 파이팅을 외치며 과자 봉지를 건네주었다. 며칠 뒤 그는 시험을 마치고 와서 비타 500을 내밀며 말했다.
“과자 덕분에 시험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산대에서 오간 짧은 인사였지만, 그날 하루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쌓이면서, 나도 자연스레 과거의 나를 돌아보곤 했다. 20대 초중반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릴 적에 가졌던 꿈들이 잠시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 이루지 못한 꿈보다는 계산대 너머에서 만난 얼굴들과 함께 살아낸 시간에 더 마음이 머무른다.

계산대 너머의 교류들도 잊을 수 없다. 단골 중년 여성 손님의 가방에 달린 곰인형이 예쁘다고 말했을 때, 손님은 웃으며 “딸한테 선물 받은 건데” 하고는 쿨하게 내 손에 쥐여주셨다. 몇 번이나 사양했지만 끝내 받게 되었다. 답례로 작은 키링을 준비해 드렸는데, 며칠 뒤 그 손님은 내 손에 작은 상자를 건네며 말했다.
“우리 딸이 감동했대요. 이건 우리 딸이 직접 만든 거예요.”
상자 안에는 수제 키링이 들어 있었다. 계산대 너머의 짧은 만남 속에서도 마음은 그렇게 이어졌다. 인형과 키링을 바라볼 때마다, 사람 사이의 온기는 길게 남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생일에는 같이 일하던 언니가 내게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서울에서 타인에게 처음 받아본 생일상에 이어 두 번째였다. 나이를 먹을수록 챙기지 않던 생일이었기에, 뜻밖의 이벤트는 오래 남았다. 언니와 삼촌이 준비해 준 케이크에 꽂힌 작은 초를 불며, 타지에서 맞은 생일이지만 그날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그 무렵에는 업체 관계자들과 이야기도 나눴다. 내가 상품 진열에 관심이 있어서 이것저것 묻곤 했는데, 그 대화가 스카우트 제안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밝고 활동적인 성격이라 이런 일을 잘할 것 같다며 “한번 와서 제대로 해볼 생각 없냐"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농담처럼 흘려들었지만, 같은 말을 듣다 보니 마음이 솔깃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을. 동시에, 계산대라는 자리가 단순히 물건을 찍고 돈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도 느꼈다. 작은 태도 하나가 다른 이의 눈에 띄고, 그게 기회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퇴근길엔 시장에서 장사하던 이모들이 불러 앉힌 술자리에 함께한 적도 있었다. 피곤한 몸이었지만 묘하게 기분 좋은 피로였다. 그때 문득, 나도 어느새 이 동네의 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시장의 소음과 불빛 속에서 건네던 소주잔은, 낯선 이곳을 조금은 덜 낯설게 해 주었다.

마트에는 늘 유행이 스쳐 지나갔다. 포켓몬 빵이 인기를 끌던 시절엔 손님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입고도 되기 전에 와서 기다리던 손님들, 물량이 부족해 개수 제한을 두던 날들, 직원이 빼돌렸다고 화내는 모습들까지. 사실 계산대 앞은 언제나 유행이 지나가는 자리였다. 어떤 때는 과자, 또 어떤 때는 캐릭터 상품이나 음식이 인기를 끌었다. 전주에서 일할 때는 인형 뽑기 기계가 유행이었는데, 나도 한 달 월급을 몽땅 쏟아부을 만큼 빠져들었던 적이 있다. 금방 열광하고 금방 식어버리는 유행들을 오래 지켜본 덕분일까, 나는 점점 욕심이나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손님들 사이에 휩쓸리지 않고 내 마음을 지키는 법을 조금은 배우게 된 것이다.

동료들과의 인연도 깊었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는 지금도 상반기에 한 번, 하반기에 한 번씩은 얼굴을 본다. 힘든 시간을 함께 버텨냈기에 가능한 일이다. 계산대 앞에서 함께 나눈 웃음과 한숨, 때로는 억울함까지, 그 모든 순간이 우리를 이어 주었다.

반면, 사장님 부부는 돈 이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마트를 리모델링해 더 크게 확장했다고 했다. 규모는 커졌지만 직원들을 여전히 함부로 대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씁쓸했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마트의 외형은 달라졌어도, 그 안의 풍경은 여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에서 보낸 마지막 시절은 그렇게 흔적이 되어, 지금도 내 안에 남아 있다. 계산대 앞에서 오갔던 웃음과 무례, 선물과 따뜻한 말들, 함께 버텨낸 사람들의 얼굴이 여전히 선명하다. 그 시절의 계산대는 이미 끝났지만, 그 기억들은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해 주는 힘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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