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을 눌러가며 웃는 법을 배웠다
계산대 앞에 서면, 반말과 욕설은 기본이었다.
그걸로 매번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애초에 서비스업은 못 할 것이다.
거기에 플러스 하나씩은 꼭 붙어서 오는 손님들이 있다. 내가 일했던 곳에서는 마스크, 가격, 봉툿값, 반품, 배달 등 그랬다.
매번 생각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니 차라리 크게 안내 문구를 붙여놓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전달하든 듣는 사람은 그저 기분이 나쁠 뿐이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마트 직원입니다.
가격 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사장님이나 브랜드에 물어봐 주세요.”
그날도 한 아저씨가 계산대 앞에서 다짜고짜 욕을 퍼부었다.
“여긴 왜 이렇게 비싸!”
자기 동네는 400원이라는데,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소리를 지르는 걸까. 레쓰비 한 캔이 오백 원이면 싼 건데, 우리가 가격을 올린 것도 아닌데. 업체가 올린 거고, 브랜드가 올린 건데. 결정권은 사장님에게 있는데, 왜 우리한테 싸우자고 덤비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속으로는 차라리 저 안내 문구를 붙여두고 싶었다. 마트에서 천 원 이하 상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오백 원짜리 커피 앞에서 절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나는 웃으며 짧게 말했다.
“그러게요, 왜 그렇게 비싼 걸까요? 저는 직원이라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러자 아저씨는 혼자 폭발하듯 내뱉었다.
“아, 씨. 비싸서 두 번 다시 안 와.”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속으로는 수십 마디를 쏟아내고 싶었지만, 결국 내 입 밖으로 나온 건 짧은 말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봉투 문제로도 손님들과 실랑이가 이어졌다.
사장님은 늘 말했다.
“물건 1~2개는 그냥 하얀 봉투에 담아드려. 봉투값 때문에 손님이랑 싸워봤자 좋을 게 없다. 그러니까 웬만하면 봉투 이야기는 꼭 해라.”
그래서 나는 손님이 봉투를 안 가져오면 하얀 봉투에 담아드리면서도 꼭 덧붙였다.
“오늘은 그냥 담아드리는데, 요즘은 봉투값 받고 있으니까 다음에 오실 때는 꼭 봉투 챙겨 오세요.”
어느 날은 계란을 사간 아저씨가, 계산 다 끝나고 나서 말했다.
“봉투 줘.”
“봉투값 받습니다.”
나는 웃으며 설명드렸지만, 아저씨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 몸 불편한 거 안 보여?”
그때 실장님이 와서 차분히 말했다.
“그럼 봉투 대신 상자에 담아서 드릴게요.”
그러자 아저씨는 “저 밖에 자전거 있어. 거기다 묶어놔.”라고 말하곤 자전거 타고 떠났다.
비슷한 상황은 다른 손님에게서도 반복됐다. 이번에는 아예 욕설까지 이어졌다.
한 할아버지가 봉투 얘기를 꺼내더니, 내 말이 마음에 안 든다며 대뜸 욕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년이 어른한테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나는 차분하게 웃으며 말했다.
“손님, 말씀을 그렇게 하시면 제가 뭐가 됩니까. 저도 손님께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하지만 그분은 멈추지 않고 계속 “년, 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마트 안에서 장사하던 고깃집 사장님이 대신 설명해 주려 했지만, 할아버지는 듣지 않았다.
“다른 데는 다 공짜로 준다고! 너희들이 법이야? 어디서 어린 게 어른한테 말대꾸야?”
억울했지만 꾹 참으려 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욕을 계속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최소한의 말은 꺼냈다.
“손님, 저도 손님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안 오셔도 됩니다. 다른 곳으로 가셔도 돼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더 큰 소리로 맞섰다.
“내가 고학년 졸업했어. 너희들이 뭔데 나를 가르쳐?”
결국 매니저 언니가 와서 상황을 정리하려 했지만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경찰을 부르자는 말까지 나왔다.
그때, 전혀 관계없는 다른 어르신 한 분이 나서서 대신 사과를 하셨다.
“같은 어른으로서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요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고 저러는 건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요. 아가씨, 내가 미안해요.”
그러면서 내 손에 2천 원을 쥐여주며 말했다.
“이거 가지고 시원한 거라도 마셔. 기분 풀어요. 어른이 다 저러지는 않아. 좋은 어른도 많아.”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이런 일 익숙합니다. 돈은 괜찮습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끝내 2천 원을 내 손에 꼭 쥐여주고 가셨다.
그날 저녁 교대시간, 매니저 언니를 통해 보고를 받은 여사장님은 한숨을 쉬며 길게 말했다.
“○○, 너는 손님을 거부할 권리가 없어. 손님 거부 권리는 사장인 나만 있는 거야.
너도 그렇고, 20대인 우리 자식도 그렇고, 젊은 애들은 다 너희 생각만 고집부리는데.. 그래. 요즘 젊은 애들은 이런 일 있으면 그만두고 다른 데 가면 되지만, 나는 계속 여기서 장사를 해야 되잖아.
이게 뭐야? 왜 자꾸 트러블을 만들어? 안 그래도 나가는 돈은 많은데 매출은 계속 마이너스야. 너 한 명 때문에 가게가 망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손님한테 욕 듣는 거 기분 나쁘지. 하지만 손님은 손님이야.
나는 그런 손님도 중요해. 그 손님이 다른 데 가서 우리 가게 나쁘게 말하고 다니면 소문 나서 우리는 망해. 그러면 너도 일 못 하게 돼.
너도 장사한다면서? 직원이 너처럼 말하고 행동해 봐. 그럼 어떨 것 같아? 그 직원이 너보다 더 심하게 하면 너 감당할 수 있어?
○○, 왜 계속 너만 생각하니? 사회는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손님이 아무리 지랄 같아도 우리는 무조건 참아야 돼. 남 밑에서 일하는 건 힘들다는 거 알겠는데 똑바로 좀 하자.”
나는 그 말을 그냥 듣고만 있었다. 억울했지만, 결국 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많은 것들을 삼키고 넘어가야 했다.
상품 문제로도 실랑이는 끊이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어떤 손님은 건전지를 들고 와서 아무 말 없이 말했다.
“반품해 줘.”
속으로는 ‘또 시작이네…’ 싶었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친절하게 말했다.
“고객님, 개봉한 제품은 반품 사유를 설명해 주셔야 처리가 가능합니다.”
그러자 손님은 소리를 질렀다.
“반품해 줘!”
“영수증은 있으신가요? 제품에 문제가 있나요?”
내가 조심스레 물으니, 그제야 말했다.
“건전지를 교체했는데 불이 자꾸 나가. 가짜를 왜 팔아?”
가스레인지 불이 꺼지는 걸 건전지 탓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논리인지. 제품 자체 문제라면 제조사에 문의해야 할 일이었다.
내가 다시 설명했고, 실장님도 설명했지만, 손님은 못 알아듣는 척을 하다 결국 말했다.
“그래서 반품 안 해준다고? 여기 안 와.”
그리고 또 다른 날에는, 배달 문제로 곤란을 겪었다.
엘리베이터 공사 중인 아파트가 있었는데, 그곳은 배달이 어렵다고 사전에 공지까지 해뒀다.
어느 날, 중년 부부가 와서 장을 보고 배달을 요청했다. 주소를 보니 그 아파트였다. 내가 정중히 사과드리고 어렵다고 말씀드렸지만, 기어코 실장님을 불러 또 한 번 부탁하셨다.
그 와중에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단골 서비스가 왜 이래? 남자가 돼서 이거 가지고 10층도 못 올라가? 뭐 이런 마트가 다 있어? 나 여기 두 번 다시 안 와. 야, 나 거래 끊을 거니까 포인트 다 써!”
그 옆에 있던 남편은 실장님보다도 열 살은 젊어 보였다. 본인이 사는 아파트가 엘리베이터 공사 중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을 텐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싶었다.
정말로, 그 부부는 자신이 지금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단 한 번이라도 돌아본 적이 있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자동차 안에서 아줌마가 소리를 질렀던 장면이다.
“우유 갖다 줘!”
나가보니, 운전석에서 의료용 보조 지팡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빨리 갖다 줘!”
그 일도 다른 날들과 다르지 않았다. 결국 우유를 들고 굽신굽신 하며 갖다 드려야 했다.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은 복잡해졌다. 그리고 나는 늘 한 가지를 떠올렸다.
평소에는 일반인처럼 대우받고 싶어 하면서도, 불리해지면 “몸이 불편하다”는 말을 꺼낸다. 상대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 그게 약점이자 동시에 강점이었다.
나는 장애인 가족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일반인 가족’이 아니라 ‘장애인 가족’ 틀 안에서 자랐다. 그게 어떤 건지, 일반인은 쉽게 상상 못 한다. 우리 부모님이 그 상황을 봤다면, 싸웠을 거다. 저런 식이면 우리 같은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더 안 좋아진다고 했을 것이다.
끝내 나는 침착함으로 버텼다. 그게 이 일을 견디며 내가 지켜온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그 침착함이 결국 오늘의 나를 만든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