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지 못해도, 여전히 나를 움직이는 것들
꿈.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어릴 때부터 꿈이 많았다.
어린 시절에는 공을 차고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남동생이 “여자는 축구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과 함께 내 손을 밟아 손가락이 골절되면서 그 꿈은 멈췄다.
그 시절엔 그랬다. 남녀가 하는 일이 분명히 나뉘어 있었고, 운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학창 시절이 되자 관심은 요리로 옮겨갔다.
우연히 본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상상했다.
내가 만든 음식을 가족이 다 같이 먹으면,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거라고.
그게 요리사라는 꿈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음식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 사정은 그 꿈을 감당할 수 없게 했다.
결국 인문계로 진학했다.
그래서 대학교는 무조건 요리였다.
호텔조리 전공을 선택하고, 서울에서 졸업 후 호주 르 꼬르동 블루에 유학을 가는 게 꿈이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외국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가고,
언젠가는 내가 직접 설계한 건물에 내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열고 싶었다.
하지만 20대의 나는 그 꿈에 닿지 못했다.
학교는 끝내 졸업하지 못했고, 요리사의 꿈은 점점 현실과 멀어졌다.
그래도 요리만큼은 쉽게 놓지 못했다.
작게라도 식당을 열고 싶었고, 손님이 몇 명 안 오더라도 내가 만든 음식을 직접 내놓는 그 순간을 상상하며 버텼다.
30대가 되자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카운터 너머에서 보내다 보니,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던 나는 점점 혼자 있는 적막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 깊이,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 곳에 정착해서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손님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잠시라도 온전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현실적인 꿈을 꾸고 있다.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는 것, 그리고 취업을 하는 것.
아주 단순하지만 지금의 내게는 그게 가장 간절한 목표다.
대학을 다니기로 결심하기까지는 많이 망설였다.
‘이 나이에 굳이 대학을 다시 가야 하나?’
하지만 시골에서 살아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학력을 안 본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더 많이 본다.
고졸이면 불이익이 당연하다는 듯이 굴고,
생산직이라도 최종 학력에 따라 대우가 달랐다.
처음엔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냥 현실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늦게라도 배우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나은 내일을 만들고 싶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욕심도 생겼다.
복수전공도 해보고 싶고, 대학원 진학도 하고 싶다.
전부 이루면 내 나이는 40대가 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시작하는 게,
지금의 나에겐 가장 솔직한 꿈이니까.
이 나이에 공부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미친년이 정신 못 차렸네.”
“서울에서 전문학교 졸업도 못 하고 도망간 주제에.”
“현실적으로 생각 좀 해.”
“그 나이에 취업이 될 것 같아?”
“결혼 안 해? 아이는 안 낳을 거야?”
무엇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꼭 나이 이야기가 따라온다.
나는 그냥 하고 싶은 게 많을 뿐인데,
앞으로 죽는 날까지 욕을 먹으며 살 것 같다.
그래서 욕먹는 김에 이번엔 또 다른 꿈 이야기를 꺼내본다.
뉴스에서 종종 본 적 있을 것이다.
인구감소, 지역소멸, 폐가, 폐마을.
지방은 그 문제가 심각하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이야기다.
내가 살고 있는 시골은 집을 사려는 사람은 있지만, 집주인이 팔지 않는다. 이유는 ‘돈’이다.
덕분에 이곳의 관광지 개발은 언제나 제자리걸음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보면서 나는 종종 상상한다.
빈집이 많은 마을을 중심으로 남아 있는 몇 가구는
읍으로 이주시켜 그 마을 전체를 산림으로 되돌리는 프로젝트, "자연으로부터 빌린 땅을 다시 자연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은 사라진 생명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입소문이 나면 그것을 보러, 연구하러, 촬영하러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 읍에는 그들을 위한 시설이 생길 것이다.
호텔, 식당, 연구소 같은 것들.
소멸이라 불리던 지역에도 다시 활기가 돌 것이다.
아니면 도시에 몰려 있는 많은 것들 중,
가장 큰 무언가 하나만 지방으로 옮겨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이 있고, 움직임이 생기면 그곳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니까.
요즘 외국인들은 케이팝을 보러 한국을 찾는다.
그렇다면 지방에 대형 콘서트장을 세우면 어떨까.
면허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셔틀버스를 터미널과 역까지 운행한다면? 사시사철 공연이 열린다면 버스 노선도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적자를 이유로 사라지는 노선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스포츠 경기장도 마찬가지다.
지방 군수나 정치인들도 인구 유입이 늘고 표를 얻을 수 있는 일이라면 쉽게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핵심인 돈이 없으면, 어떤 계획도 허공의 그림이 된다.
그래서 이건 아직은 허무맹랑한 꿈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이런 일을 정말로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나보다 훨씬 많은 돈과 자원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만약 그들이 진심으로 지방의 미래를 고민한다면,
이런 시도가 완전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지방에 일자리가 없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다.
소멸을 막으려면,
면에 있는 주민들을 읍으로 이주시켜 그 빈터를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읍에는 숙박시설과 식당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일자리도 생기고, 사람도 자연스럽게 모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렇다.
“만약에 내가 돈이 있다면, 이런 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재산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회와 기억이 남는 땅을 만들고 싶다.
한때는 사라져 가던 마을이,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이 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꾸는 비현실적인 꿈이다.
조용하지만 오래 머무는,
아직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런 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많은 게 변했지만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잠시 현실을 위해, 그 꿈을 보물상자 안에 넣어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