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언제나 관계를 흔든다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그 말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

by 지화


살다 보면 한 번쯤 이런 말을 듣는다.
“이런 이야기해서 미안한데, 지금 내 사정이 이런데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그 말 앞에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빌려줄까, 거절할까. 빌려줬는데 돌아오지 않으면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안다. 돈을 빌려 달라는 말을 꺼내는 쪽도 쉽지 않다는 것을.
전화를 걸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순간, 이미 수치심이 따라붙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심하게 “돈 없어” 한마디로 끝내지 않는다.
그 말이 상대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신 내 사정을 설명한다.
먹는 데 돈을 쓰는 건 사실이지만, 치아 치료와 교정 때문에 대출을 떠안고 있어 여유는 없다는 것.
혹시 내가 넉넉해 보였다면 미안하다고, 그런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이런 대화는 늘 기록으로 남겨 두었다.
카톡이나 문자처럼 증거가 되는 글로 남겨야 안심이 됐다.
돈 얘기는 언제든 흐려지고, 나중에는 다른 의미로 비틀리기 쉽기 때문이다.
차라리 글자가 나를 지켜주는 편이 더 안전했다.

돈은 언제나 관계를 흔들고 마음을 무겁게 한다.
빌려주면 불안이 따라오고, 거절하면 미안함이 남았다.
갚지 않는다면 그다음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을 알지 못한 채, 나는 늘 같은 고민 앞에 서야 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두고 가끔 넉넉하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나는 부자가 아니다.
그저 굶주림이 싫고, 아끼는 게 더 싫어서, 먹는 데만 돈을 쓰고 있을 뿐이다.

아마도 그 뿌리는 어린 시절부터였을 것이다.
친가와 외가는 늘 돈 문제로 다투었다.

그중에서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아버지와 동생들, 그리고 내가 삼촌 집에 갔을 때였다.
고기를 먹고 있었는데 작은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삼촌과 말다툼을 시작했다.
우리가 고기를 먹는 게 싫다고 했다.
다툼은 금세 부부싸움으로 번졌고, 우리는 괜히 더 열심히 고기를 씹었다.
아주 어린 기억인데도 지금까지 선명하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학창 시절이 되자 가난 자체가 싫어졌다.
그래서 나는 돈이 있는 척을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배부른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먹는 것 앞에서는 더 그랬다.
배부르게 먹는 모습이 곧 여유처럼 보였으니까.
그 착각은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기숙사에서 살던 짧은 시기를 빼고는 점심을 3년 내내 먹지 못했다.
치아 문제로 발음이 새고 모양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 앞에서 밥을 먹는 게 두려웠다.
누군가는 대놓고 “밥맛 떨어진다”는 말을 했고, 그 말이 반복될수록 점심시간은 공포가 되었다.
전교생과 선생님이 함께 모여 앉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은 나에게 모욕이자 두려움이었다.
결국 나는 아예 점심을 거르는 쪽을 택했다.
한창 배고플 나이였는데도, 그렇게 3년을 버텼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굶주림은 내 곁에 있었다.
남들이 짬밥, 개밥이라고 부르던 음식조차 가리지 못하고 먹었던 날도 있었다.
라면 하나로 며칠을 버틴 적도 있었고, 편의점에서 근무할 때는 폐기 음식이 많아 도움이 됐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을 먹고 배를 부여잡은 채 집에서 운 적도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타인과 함께 먹는 자리에 앉아야 했다.
억지로라도 먹고, 나누며 버텼다.
그래서인지 소화불량 같은 문제는 늘 따라다녔다.

치아 치료와 교정을 시작하면서는 상황이 더 힘들어졌다.
긴 치료 과정은 고통스러웠고, 몸무게가 38킬로그램까지 빠지기도 했다.
돈이 부족해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주변을 보니, 나처럼 빠듯한 형편 탓에 식사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부터는 차라리 내가 간식을 챙겨 두고 함께 나누자는 마음이 생겼다.
먹는 걸 아끼다 더 초라해지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맛있게 먹고 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간식 박스는 습관이 되었고, 내 생활의 작은 규칙이 되었다.
교정을 받으면서 예전만큼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남들 앞에서 먹는 건 조심스러웠다.
식사 자리에서는 손거울을 꺼내 확인하는 습관도 붙어 있었다.

성인이 된 뒤에도 돈은 관계에 끼어들었다.
어느 날, 동창이 화장품을 사달라며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다. 돈이 없다고 거절하자 온갖 욕설과 함께 “죽을 때까지 이번 일 기억하겠다”라고 했다.
또 어떤 날은 사고를 쳤다며 돈을 빌려달라는 연락이 왔다.

단짝이라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나는 아직 너무 어렸다.
몇백만 원이라는 돈은 나에게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액수였고, 결국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며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또래였던 친구들 중에는 선뜻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각자의 삶을 버티느라 여유가 없었던 나이였다.

결국 그 일은 가족에게까지 알려졌다.
마지막에는 친할머니가 대신 빚을 갚아 주셨다.
나는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더 크게 밀려왔다.
내가 책임지지 못한 문제를 노인이 짊어졌다는 사실이, 어린 마음에는 크나큰 수치심으로 남았다.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건은 단순히 돈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그 친구 때문에 모욕적인 상황에 내몰렸고, 충격이 너무 커서 결국 스스로를 해치는 선택까지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 잘못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모든 책임을 나에게 돌렸고, 끝내 스스로를 무너뜨렸다.
그 기억은 긴 그림자처럼 마음속에 드리워져 지금까지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들은 이어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나보다 한 살 많은 언니였다.
안정적으로 직장까지 다니고 있었기에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 언니는 필요할 때마다 오만 원씩 빌려 갔다.
처음에는 약속대로 꼬박꼬박 갚았지만, 마지막 오만 원은 끝내 갚지 않은 채 잠수 타 버렸다.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은 그렇게 허망하게 찾아왔다.

또 다른 친구는 소액을 자주 빌리더니 어느 순간부터 금액도, 횟수도 늘어났다.
코로나19 시기, 결국 내가 직접 “이제는 더는 빌려줄 수 없다,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단순히 거절만 한 게 아니라 내 상황과 마음을 솔직히 적었고, 마지막에는 잘 살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스스로 인연을 정리했다.

휴게소에서 근무할 때는 동료 언니가 몇 번 돈을 빌려 갔다.
처음엔 잘 갚았고, 이사 때 도와준 고마움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연락은 돈 얘기뿐이 되었고 그 인연도 거기서 멈췄다.

그렇게 흩어지고 끊어진 관계들이 하나둘 쌓여 갔다.
처음에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만 반복되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자책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돈이 오가는 순간, 사람의 마음은 쉽게 달라지고, 가까웠던 관계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는 것을.
결국 내가 지켜낸 건 돈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그 과정을 겪으며 생각한다.
돈은 사람을 시험하는 걸까, 아니면 나를 시험하는 걸까.

나이가 들면서는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정리되었다.
돈도 꼭 필요한 데에만 쓰게 되었고, 내 경우엔 여전히 대출과 음식이 중심이었다.

내가 먹는 데 돈을 아끼지 않으니까 주변에서는 자꾸 물었다.
“돈이 좀 있나 봐?”, “형편이 넉넉한가 보네?”

그 말 앞에서 나는 방어선을 쳤다.
“저 돈 없어요. 거지예요. 대출도 많고 마이너스 인생입니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 먹는 데만 돈 쓰는 거예요.”

한동안은 카톡 프로필에 이렇게 적어 두기도 했다.
“돈 없음. 돈 빌려달라는 연락 오면 인연 끊습니다.”
그만큼 돈 얘기에 지쳐 있었다.

그런 메시지와 내 규칙 덕이었을까.
연락은 한동안 뜸했다.
그러나 잠잠하던 연락은 다시 찾아왔다.

아르바이트하며 알게 된 동생이었다.
자동차 문제로 이백만 원이 넘는 큰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먹을 걸 자주 사주고 챙겨 줬으니, 그 아이 눈에는 내가 넉넉해 보였을 것이다.

나는 말했다.
“저축해서 현금이 없어. 이 정도 돈이면 주변에게 빌릴 게 아니야. 부모님께 무릎이라도 꿇고 말씀드리고, 각서라도 써서 진심을 보여드려.”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끝까지 거절했다.
전화를 끊고, 늘 하던 대로 카톡을 보냈다.
내 사정을 적고, 혹시 오해를 불렀다면 미안하다고 했다.
마지막에는 가족에게 의지하라고 덧붙였다.

그 아이는 결국 그 돈을 해결했을까.
다음 근무 때 마주하겠지만,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돈은 언제나 관계를 흔들고 마음을 무겁게 한다.
빌려주면 불안하고, 거절하면 미안하다.

앞으로도 이런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그 말을 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다만 그 순간이 오지 않기를, 마음 깊이 바랄 뿐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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