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했던 시간들과, 말할 수 있게 된 지금
어릴 때부터 나는 말로 표현되지 않아도 느껴지는 무게 속에서 자랐다.
"아빠, 엄마가 몸이 불편하시니까 네가 잘 도와드려야 해." "아이고, 안 됐다. 결혼은 힘들겠네." "아들은 그렇다 쳐도, 딸은 빨리 결혼해야 효도지."
그 말들이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서서히 이해하게 되었다. 학교 행사에서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과 나의 부모님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시각장애를 갖고 계셨고, 어머니는 지체장애가 있으셨다. 그 사실은 나의 일부였지만, 언제부터인가 입에 담지 않게 되었다. 상대방의 당황한 얼굴, 무심코 던진 말이 만든 정적. 그런 순간들이 싫어서, 나는 점점 침묵을 선택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러웠다. 부모님의 장애가 드러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런 경험들은 자연스럽게 연애나 결혼과는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친척들이 맞선을 권하던 시절, 나는 양팔에 타투를 새겼다. 겉으로는 내 선택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멀쩡하니 결혼해야지"라는 말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던 마음의 표현이었다.
우리는 가난했고, 외로웠고, 상처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름 씩씩한 아이였다. 시끄럽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괴롭힘을 당하면 꼭 되갚는 아이.
그런 내가 자라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내 안의 조용한 파도와 어둠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작은 빛을 마주한다. 이 글은 상처에 머물지 않기 위해 쓰였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해왔고, 무엇을 포기했으며, 어디서 다시 시작했는지. 그 조각들을 모아,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주고자 한다.
상처는 여전히 흔적을 남기고 있고, 기억은 흐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 위에 작은 이름 하나를 새기기로 했다.
'늦게 핀 마음, 그래도 피어난'
아직 많이 서툴고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다. 매일을 버텨내고 있고, 때로는 다시 꿈을 꾼다. 비록 여러 번 꺾였고 수없이 포기했지만, 그 모든 과정은 나를 만든 시간이었다.
세상은 결과로 판단하겠지만, 나는 과정으로 살아왔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제야 비로소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어서, 조심스럽게 꺼내는 고백이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당신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들과 그 안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