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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 나만의 방식으로

아팠지만, 버텼고, 웃었다. 내 안의 불씨를 놓지 않기 위해.

by 지화


고등학교는 읍내에 있는 남녀공학 인문계였다.
내가 원하던 조리 특성화고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집안 사정에 따른 결정이었다.

첫날부터 초등학교 시절 나를 악질적으로 괴롭히던 몇몇 아이들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수업 중에도 나를 슬쩍 보며 웃었다. 익숙한 소곤거림이었다.
나는 예전처럼 강한 척을 했다. 무시했고, 웃었고, 맞서 싸웠다.

하지만 예전처럼은 버틸 수 없었다. 수업은 점점 의미 없어졌고, 머리는 멍했고, 무기력해졌다.
교실 밖으로 도망치듯 몸을 옮겼고, 결석이 잦아졌다.
때로는 ‘아프다’는 핑계로 집에 숨었다. 그런데 그 집조차 더는 숨 쉴 곳이 아니었다.

기숙사에 지원했다. 조금이라도 낯선 환경이면 나아질까 싶었다. 하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나왔다.
낯선 방,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나는 더 외로워졌다. 그곳도 내 자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손목을 그었다. 깊지는 않았지만, 피가 맺히는 걸 보며 ‘이게 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날의 공기, 손끝의 떨림, 그 모든 것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선생님이 눈치챘고, 면담이 이어졌다.

집에 와서 엄마는 내 뺨을 처음으로 때렸고,
아빠는 정신병원에 입원시키자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째는 같은 학교를 다니기 싫다며 자퇴했고, 검정고시를 준비해 고득점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나를 부끄러워했다.

이후, 부모님은 내가 전학 가능한 조리 특성화고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 역시 작은 기대를 품었다.

그 무렵부터, 뜻밖의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 학기가 한참 지난 후였는데도 나를 계속 지켜본 건 담임선생님을 포함한 몇몇 선생님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겉도는 학생 한두 명을 매일 신경 쓴다는 건 귀찮은 일일 텐데, 그들은 계속 말을 걸어주고, 정상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공부를 일찌감치 내려놓은 나에게 선생님들은 도래샘이라는 독서 동아리와 ‘4H’ 봉사활동을 추천했다. 차분해지기를 바라며 건넨 신청서였다.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인간관계라는 것을 만들었다.

표현이 서툴고, 말주변도 없던 나는 대화할 때마다 긴장했고, 목소리는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앞뒤가 엉키고 빨랐다.
흥분한 상태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를 귀엽다고 웃어주고, 싸워도 금방 풀어지는 동아리 사람들 덕분에 외롭지는 않았다.
그곳은 내 학창 시절 유일한 ‘쉼’의 공간이었다.

학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선생님들은, 훗날 같은 학교에 입학한 막내 동생에게 “너희 누나는 전설 같은 학생이야”라며
아이들 졸음을 쫓는 옛날이야기처럼 내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한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그때 내가 진짜 꿈을 이뤘다면, 그 전설은 괴담이 아닌 자랑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시절, 나는 처음으로 단짝 친구가 생겼고, 첫 남자친구도 생겼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지만, 그 친구는 늘 내 곁에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데이트를 제대로 해봤고, 그제야 사랑이라는 감정을 조금씩 배워갔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군대 첫 휴가를 나온 날까지 우리는 함께였다.

솔직히, 지금 돌아보면 이 외모로 어떻게 연애를 했을까 싶은데, 그 시절의 그는 내게 진심이었다.

지금은 첫 남자친구도 단짝 친구도 모두 지난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에 안도한 아빠는 전학과 추가 공부 대신 사회를 배우라며
터미널 안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주셨다.
나는 주말마다 일했고, 처음으로 내 손으로 돈을 벌었다.
작은 일이었지만, 내 안에 무언가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자, 동시에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부정교합과 덧니, 튀어나온 앞니는 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되었고, 나는 점차 급식을 먹지 않게 되었다.
어울리지 않게 작은 손거울을 들고 다녔고, 누군가와 같이 밥 먹을 때 나의 흉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때는 점심에 배가 고파도 꾹 참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식 날 나는 졸업생 대표로 상을 받았다.
선생님들 추천으로 시작한 봉사활동과 독서 덕분이었다.
외부 활동 덕분에 사립고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았고, 나는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며 씩 웃고 싶었지만, 웃음이 쉽게 나오진 않았다.
그저,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잘 버텼다. 나, 진짜 수고했다.’

그 한마디가 내 등을 토닥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다시 한번 서울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다시 시작될 내 삶을, 조심스럽게 상상해 봤다.

이제, 스무 살의 내가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고3 때, 선생님들은 내신 성적이 괜찮다며 지방 국립대 진학을 권했지만,
나는 이미 서울에 있는 조리 전문학교에 합격해 있었다.

사실 어른들이 추천해 준 길을 따라갔다면 안정적인 삶을 살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나는 중학교 시절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요리 프로그램을 보고
“내가 만든 음식을 가족들이 다 함께 먹는다면, 더 이상은 슬퍼하지 않겠지.”
그 상상은 내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고, 나는 요리라는 세계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것은 내게 아주 오래된 약속 같은 꿈이었다.
첫 번째 꿈이 무너지고 나서야, 나는 그 오래된 약속을 다시 붙잡았다.
수능은 보지 않았다.
내 마음속에는 이미 조리사 유니폼을 입은 내가 있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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