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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낯선 도시, 낯선 사랑, 그리고 나

처음의 서울은 따뜻했고, 다시 만난 서울은 낯설었다

by 지화


고등학교를 마친 뒤, 나는 짐을 싸서 서울로 향했다. 정확한 시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겨울이었을 것이다. 커다란 캐리어 하나, 그게 서울살이의 전부였다. 아빠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배웅했고, 나는 괜찮은 척 웃으며 떠났다.

처음엔 첫째 고모네 식구들과 함께 살았다. 어색했지만, 오랜만에 북적이는 집 분위기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러다 막내 고모가 사는 대림동 주택 옥탑방으로 옮기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자취와 학교생활을 병행하게 됐다.

학교는 영등포구에 있었고, 수업을 듣는 것도, 실습복을 입는 것도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빠르게 따라붙었다. 생활비, 실습 재료비, 교통비. 돈은 늘 부족했다. 결국 1학기 말, 나는 휴학을 결심했고, 그 선택은 자퇴로 이어졌다.

그 무렵, 밤늦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지하철 계단엔 피가 묻어 있거나 깨진 술병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여러 나라 말이 섞인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대림동은 내가 기억하던 서울과는 달랐다.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곳은 돌곶이역 근처였다. ‘응답하라’ 드라마에 나올 법한 동네처럼, 골목마다 작은 슈퍼가 있었고, 길가에서는 아는 얼굴을 자주 마주쳤다. 집집마다 노란 불빛이 새어 나왔고, 이름을 부르면 돌아봐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어 돌아온 서울은 낯설었다. 지하철도, 버스도,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투도 내가 기억하던 서울이 아니었다. 같은 서울인데도 나에겐 너무 복잡하고, 너무 시끄럽고, 너무 낯설었다.

그렇게 고립감이 깊어지던 무렵, 고등학교 시절부터 만나던 남자친구가 방학을 맞아 서울로 올라왔다. 그의 가족이 서울에 있었고, 나에게는 쉼이 되어줬다.

그와 함께한 서울에서의 시간은 처음이 많았다. 처음으로 본 영화는 명탐정 코난 극장판 16기였다. 내가 코난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던 그는 말없이 예매를 해두었다. 극장에서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 영화를 보고, 팝콘을 나눠 먹으며 웃고 긴장했다.

또 다른 날은 어린 왕자 전시도 함께 봤다. 조용한 전시장을 나란히 걷고, 예쁜 그림 앞에서 한참 머물렀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퍼즐을 사 와 작은 옥탑방에서 맞췄고, 밤이면 말없이 동네를 산책했다. 말없이 웃는 게 편했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순간들이 생겨났다.

그가 자신의 누나를 소개해줘서 함께 식사한 날도 있었다. “웃는 얼굴이 예쁘다.” 그녀가 해준 그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어른에게 처음 들어본 외모에 대한 칭찬이었다.

그의 어머니와도 식사를 했지만, 누나와는 달리 나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 기운이 느껴졌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마음 한구석에 작은 불안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게.

어느 날, 막내 고모네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던 저녁, 나는 그를 가족에게 처음 소개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산책을 하던 길에서 그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

진심이 느껴졌다. 그 순간, ‘결혼을 한다면 이 친구밖에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던 우리. 연애 기간은 길었지만,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느껴진 ‘연애다운 연애’였다.

그가 입대한 뒤, 나는 점점 더 무너졌다. 학교도, 돈도, 사람도, 모든 게 버거웠다. 결국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짐을 쌌다.

스무 살의 나는 그렇게 서울이라는 섬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려갔다. 단짝 친구와 함께 지내며, 김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단순히 서빙만 하면 된다고 들었지만, 가스 불 앞에만 서도 숨이 막혔다. 식은땀이 멈추지 않아 칼을 쥔 손이 떨릴 정도였다.

그 순간에도 ‘내가 긴장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몸이 보내던 신호였다.

나는 또 한 번, 내가 이루고 싶었던 꿈 앞에서 도망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께 들켰고, 크게 혼이 났다.
“어른들 말 무시하고 서울 간 거면, 졸업이라도 해야지.
2년짜리도 졸업 못 하고, 결국 패배자처럼 도망쳐서 내려온 게 시골이냐.”

그 말이 꽂혔다. 말문이 막혔고,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서울 생활을 완전히 정리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첫 휴가를 나왔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기쁨보다는 쌓인 감정과 오해가 먼저 터졌다.

“나는 너를 좋아할 자격이 없어. 미안해.”

울먹이며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나도 무너졌다.
언제나 헤어지자고 말하던 쪽은 나였는데, 이번엔 그가 먼저였다.
군대가 힘들었고, 나는 현실이 답답했다.
그저 흔한 다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비 오는 저녁, 그는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현관 앞에서 밀려오는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뒤쫓아갔지만, 골목 끝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그의 소식을 들었다.
아직 마음 한편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남아 있던 나는, 언제나 그랬듯 다시 용기를 내어 그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답장은 그의 여자친구였다.

“오빠를 생각하면, 이제 그만 놓아주세요.”

그 많은 문장 중, 나는 그 한마디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그를 정말로 놓아주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미련하고, 바보 같은 선택을 반복해 왔는지를.

“나는 너를 좋아할 자격이 없어.”
그의 마지막 말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녔다.
마치 저주처럼, 이후의 연애에서도 나는 똑같은 말을 들었다.
그 문장은 여전히 내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다.

그의 마지막 소식은 결혼 소식이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첫사랑을 완전히 떠나보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나에게 기회이자 고립이었다.
처음엔 시작이었고, 나중엔 끝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사랑도, 이별도, 외로움도, 자립도 처음으로 배웠다.

지하철 소음, 혼자 먹는 컵라면, 실습복에 남은 국물 자국,
알바 후 비 오는 날 젖은 운동화.
그 모든 것이 서울살이의 기억이었다.

스무 살의 나는 그렇게 서울이라는 섬에 잠시 머물렀고,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하며, 다시 짐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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