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장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이 무너졌고, 글쓰기로 나를 붙들었다
책임감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질 무렵, 나는 마트 옆 편의점의 점장이 되어 있었다. 사장님 부부가 믿고 맡겨준 자리였고, 나는 그 신뢰에 보답하듯 하루하루를 견디며 일했다.
전주에서의 생활은 여전히 가난했고 팍팍했지만, 편의점이라는 공간은 일종의 일상 회복 구역이 되어주었다.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도, 다시 한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되짚어볼 여지를 남겨준 공간이었다. 마트에서부터 이어진 신뢰가 있었기에, 그 자리에 설 수 있었고, 매장 하나를 맡는다는 책임감은 때때로 나를 붙잡아주는 동아줄이기도 했다.
편의점은 30평이 넘는 넓은 매장이었고, 평일 오후 근무자, 야간 근무자, 주말 근무자와 함께 근무하는 구조였다. 나는 매장 운영과 발주, 진열, 직원 교육 등의 실무를 전담했고, 급여나 민감한 계약 관련 업무는 사장님 부부가 처리했다. 근무 시간은 주 5일, 하루 8시간이었다. 매장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그만큼 나를 믿어준다는 신뢰가 느껴졌다. 손님들의 얼굴도 하나둘 익숙해졌고, 나는 그 속에서 일상을 회복해 가고 있었다.
그 시기, 마트 점장님의 권유로 도배 봉사활동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낡은 벽지를 걷고 새로 붙이는 단순한 반복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정리됐다. 지금도 한 달에 1~2번, 정기적으로 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에게 그 시간은 감정적으로 ‘쉼’이 되어주는 귀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 평온함도 오래가지 않았다. 점장으로 일하는 동안, 흉기나 욕설, 협박, 스토킹 등 진상 손님들로 인한 피해가 반복되었다. 평소엔 견디려고 했지만, 감정은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또래 친구들이 SNS에 일상과 여행 사진을 올리는 걸 보며 자주 스스로를 비교했다. ‘왜 나만 이런 삶을 살아야 하지?’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과거처럼 자해나 자살을 시도했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웠다. 내 삶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얽혔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20대를 온전히 '버티는 시간'으로만 보내고 있었다. 누구는 연애를 하고, 학교에 다니고, 동기들과 여행도 다닌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그런 일상이 없었고, 나 역시 당연한 것들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탓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일하고, 참으며, 버텼다. 그게 나의 20대였다.
그때,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한 살 어린 동생 같은 후배에게 하소연을 자주 했다. 밤마다 카톡을 보내고, 때론 전화를 해서 울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언니, 글을 써봐. 언니가 지나온 이야기들, 진짜 한번 써보면 좋을 것 같아.”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조심스럽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붙들기 위해서. 그렇게 나는 아주 작고 느린 방식으로 다시 나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즈음, 나는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감정 소진이 극에 달했고, 반복되는 위험 상황들 속에서 나를 유지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일을 그만두었고 처음 맡은 점장님이라는 호칭을 내려놓았다. 그 기간은 1년 정도였다.
그 이후에도 사장님 부부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사모님은 “고생 많았다”며 식사를 대접해 주셨고, 나는 가끔 마트를 찾아가 인사를 드리곤 했다. 그 인연은 나에게 긴 어둠 속에서 다시 사람을 믿게 해 준 귀한 관계였다. 지금도 나는 그 마트 점장님과 함께 도배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이라는 울타리 밖에서도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그 시간들이, 나를 조금씩 다시 살게 만들고 있었다.
편의점 유니폼을 벗은 날 이후로도 나는 여전히 전주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도배 봉사활동은 이어졌고, 마트 사장님 부부와의 인연도 남았다. 삶은 여전히 팍팍했지만, 적어도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은 채, 천천히 다시 나를 회복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바로 옆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고르던 내게 낯선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공간에서의 시간을 시작하게 되었다. 완전히 다른 사장, 다른 환경, 다른 사람들. 같은 도시 전주였지만, 그곳에서의 시간은 전혀 다른 이야기로 남게 되었다.
그렇게, 내 전주의 마지막 계절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