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을 버티며 사는 우리들
내가 나로서 잘 살기 위한 방법이란
친구와 만나서 쌉쌀한 커피를 마시다 보면 각자의 힘든 사정을 토로하는 필수 코스가 있었다. 가볍게 툭툭 내뱉는 말속에서 삶의 무게가 십분 느껴졌다. 20대에는 '저 친구는 늘 행복한 삶만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고 위안을 받았는데 30대인 지금은 누군가의 고단한 이야기를 듣는 게 힘겹다. 삶이 힘들다는 말이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고 생계를 위협하는 뜻이라는 걸 아니까. 일상에서 외면하고 모른 척했던 현실의 장벽을 내 입으로 소리를 내어 확인하고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칙칙한 암흑의 도시처럼 예측하곤 했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처지인데 으쌰 으쌰 서로 힘을 내 살아보자!"는 파이팅 넘치는 에너지는 점점 소멸해 갔다. 어깨를 토닥이며 "잘 될 거야."라는 위로도 예전처럼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각자 존재하는 자리가 다르고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다르고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공간의 구조가 다르고 꿈꾸는 방향이 다르고 사는 세계가 다르고 내다보는 앞날의 규모가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극복할 수 있는 한계는 달랐고 그 간극은 더 커졌다. 서로의 사정이 너무 다르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므로 타인의 투덜거림을 듣는 것이 힘겨워졌다. 나를 둘러싼 장벽에 시선이 막혀서 친구의 처지를 제대로 바라보기 힘겨웠고 이해하기는 더욱더 어려웠으며 응원의 말도 간신히 건넸다.
다들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웃고는 있지만, 눈빛은 슬펐다. 그 속에서 각자의 사선에서 밀려나지 않고 치열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서둘러 목소리 톤을 높이며 드라마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지만, 주제를 벗어난 이야기에서도 삶의 무게와 치열함을 느낄 수 있었다.
30대. 지금은 튼튼한 두 다리로 현실의 고됨을 이겨내고 있지만, 몸에 힘이 빠지고 내 손을 잡아줄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사선 밖으로 밀려나는 시점이 오면, 그땐 어떻게 버텨낼까? 나의 미래는 어떨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잔가지를 뻗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나의 습관은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시공간으로 침투해서 우울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에 쓸데없는 걱정만 늘어놓는 건 시간 낭비라는 걸 알면서도 늘 반복한다. 현실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오지 않은 미래에 두려움을 갖는 것에 늘 후회한다. 어쩌겠나. 수백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려 공상으로 가득 찬 지도를 그리는 것이 내 특기인 것을.
그래서 일기를 쓴다. 타인에게 토해낼 수 없는, 내 머릿속을 휘젓고 있는 잡생각을 글로 게워내고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자판을 꾹꾹 눌러 하얀 여백을 채워나간다. 나에게 일어났던 일, 현재 겪고 있는 일, 그리고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일들을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되뇐다. 나의 나쁜 언행이 업보가 되어 일이 꼬이게 될 수도, 누군가에게 베풀었던 작은 친절함이 어느 날 고양이의 보은 같은 행운으로 나에게 찾아올 수도,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거친 파도가 밀려와 나를 삼켜버릴 수도 있다. 그럴 일이 그렇게 됐거나 아무 이유 없이 그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다.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해 '도대체 왜?'라는 의문점을 갖고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다. 운명이다. 모두 운명.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냐는 거다. 과거와 미래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 글을 쓸 땐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나가는 것에 몰두하고 샤워를 할 땐 온몸에 비누칠을 정성껏 칠해서 때를 벗겨내는 데 열중하고 커피를 마실 땐 원두의 쌉쌀한 맛을 느끼는데 집중하고 더우면 선풍기를 켜고 다리가 아프면 잠시 누워있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이런 거 말이다.
이렇게 현재를 살며 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각자의 사선을 버텨내는 사람들에게도 힘이 될 거다.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아도, 존재하는 공간이 달라도, 나의 버팀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거라 믿는다. 나는 내 자리를 지키면서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면 된다. 과장된 액션이나 위로보다 나로서 중심을 잘 잡는 것이 상대방에게 힘이 될 거다. 그래서 내가 잘 살아야 한다.
내가 나로서 잘살기 위해 2020년의 365일은 어떻게 살 것이다. 그 시작은 겁나고 두려워서 가지 못했던 곳에 발을 들여놓으려고 한다. 나를 잘 알기 위해, 0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보자. 미루지 말자. 365일 중 벌써 33일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