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다름을 인정하는 것

나는 당신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by 블루

나는 남들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며 타인의 100% 이해하고 위로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대단한 착오였다. 2017년 3월경, 내가 누군가의 '뒤통수를 쳤다'라는 말을 당사자에게서 직접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꽤 오랫동안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나는 이기적이었고 지금도 이기적인 사람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난 이후에 누군가가 나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걸 믿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가치관을 중심으로 타인을 판단한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남을, 나의 세계관 안에서 바라보고 살핀다. 나만의 방식으로 그를 이해하고 위로한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은 이해와 위로는 공연한 간섭일 뿐이다. 이것은 타인의 인생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사실을 30대가 돼 서야 알아차렸다.


거센 물살이 나의 두 발목을 휘감아 꼼짝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몸 전체가 급류에 휩쓸려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 같았다. 매서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인정사정없이 휘저으며 시선을 가로막았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콧속으로 사정없이 밀려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에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실체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나는 너무 위태로웠다.


이곳에서 어떻게 나가야 할지 모르는 나에게 누군가가 밧줄을 던졌다. 그것은 다급했던 내 눈에 절대 끊어질 리 없는 생명줄처럼 보였다. 순간 갈등했다. 나를 믿고 성난 물살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면 땅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여울물도 무자비하게 튕겨버리는 큼직한 암석 위에 잠시 걸터앉거나 드러누워 혼란스러운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기다려도 됐다. 아니면 조금 더 용기를 내서 물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긴 채 따라가도 됐다. 낭떠러지는 없었다. 공포가 날 집어삼켜버렸을 뿐이다.


눈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줄은 나를 너무 혼란스럽게 했다. 내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줄을 던진 자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속으로 들어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축축이 젖은 줄을 내 손에 쥐여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여기는 너무 위험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무서웠지? 고생 많았어. 더 위험해지기 전에 빨리 이곳을 떠나자. 내가 안전한 곳으로 널 데려다줄게. 어서 날 따라와."


이 말을 듣는 순간, 빨리 이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았다. 다급해졌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나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을 텐데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준 그가 고마웠다.


그는 땅 위로 올라가지 않고 거센 급류에 맞서 뒤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그의 걸음걸이는 매우 안정적으로 보였다. 나는 홀린 듯이 줄을 잡고 두 발을 조금씩 움직였다. 그는 뒤를 돌아보며 내가 잘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불안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는 내 인생의 구원자 같았다. 그는 언제부터 나를 지켜본 걸까? 지나가던 길에 우연히 나를 발견한 걸까? 아니면 훨씬 전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우리는 물의 흐름을 거슬러 걷고 있었다. 발목까지만 올라왔던 물은 허리춤까지 차올랐다. 발만 움직이기 어려웠는데 이제 하반신 전체를 움직이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됐다. 숨이 찼다. 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두 손에 힘을 꽉 쥐었다. 나는 그에게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었다. 걷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힘든 건 '그곳'까지 가는 과정일 뿐이라며 나를 격려했다. 그는 당신만의 방식으로 나를 위로하고 이끌었다. 나는 당시의 고통이 삶에 새로운 맹동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괜히 물살을 거슬러 힘들게 맞서지 말고 순리대로 소유해도 된다며 소심하게 목소리를 내는 나의 진심을 스스로 외면하고 있었다.


물을 머금어 무거워진 옷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그곳으로 가지 않기를 적극적으로 말리는 신호였을 지도 모른다. 그를 따라가는 과정이 점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는 땅을 밟고 올라서서 선선한 바람에 쫄딱 젖은 옷을 말리고 싶었다. 깊고 억센 물길을 더는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여기에서 멈추겠다고 말했다. 그는 중간에서 주저앉으려는 나를 연민을 가지고 바라봤다. 그리고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했다. 그는 자신을 믿고 따라와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이왕 발걸음을 뗐으니 끝까지 가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안타깝게도 너무 깊은 곳까지 가버렸다.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걸어간 길을 되돌아 나올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상상했던 대지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은 목까지 차올랐다. 깊은 수심에서 느껴지는 수세는 대단했다. 온몸을 감싸고 있는 물은 침적하게 보였지만 날 부숴버릴 듯 사방에서 강하게 밀어냈다. 내 몸을 산산조각 내버릴 것 같았다. 머리 위로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모든 것이 정지된 듯했다. 나를 바라보며 온화하게 미소 짓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청연해 보였다.


나는 그처럼 그곳에 적응하고 싶었다. 동화되려고 노력했다. 내가 고생하며 걸어온 길이 틀렸다는 걸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턱밑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안간힘을 다해 움직여도 같은 자리를 맴돌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물과 하늘이 맞닿아 한계 없이 늘어진 지루한 선만 보였다. 그 선은 언젠가 내 목을 조를 것 같았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조용히 미소를 띠며 평온한 모습으로 있었다. 평화로운 그곳에서 나는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악동이 된 것 같았고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갑갑했다.


거센 물살이 발목을 휘감았던 처음 상태가 나았다. 그땐 내가 용기를 내서 움직이기만 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유속이 느려지면 속도를 올려 빠르게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여도 제자리만 돌고 있었다. 그에게는 유토피아인 세계가 나에게는 숨이 막혔다. 그는 내가 이곳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 거라고 거듭 말했다. 우리는 치열한 논쟁을 벌이며 충돌했다. 그와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하는 도중에 인지했다.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곳을 불편해하는 나를, 땅을 밟고 싶어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완벽한 천국을 거부하는 나를 안타까워했다. 이해가 아닌 안타까움. 어느 순간 서로 소통이 되지 않음을 알았다.


나는 그의 세계를 떠나기로 했다. 그는 이제 와서 그곳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나의 태도를 불쾌해했다. 그곳까지 가는 과정에서 내가 불만을 말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난다고 했다. 나는 걷기 힘들다, 숨이 막힌다, 땅을 밟고 싶다, 젖은 옷을 말리고 싶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나에게 왜 자신을 믿지 못하냐고 반문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논쟁에 대화를 포기하고 그를 계속 따라갔던 거고, 그는 내가 자신을 잘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면 어떡하냐고 말했다. 그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동시에 나도 강한 타격을 받았다. 그에게는 내가 따라간 길과 도착한 장소를 불만족스러워하는 것이 당신의 인생을 부정당하는 것이라 여겼다.


내 잘못이다. 순간순간에 내 의견을 더 적극적으로 표명했어야 했다. 좋지 않은 것을 좋다고 말한 나의 잘못이 더 크다. 상대방을 위했던 나의 배려가 그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배려가 아니라 이기적인 거였다.


며칠 뒤 그는 나로 인해서 자신을 되돌아봤다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를 했다. 하지만 자신이 나를 어둠에서 꺼내어 천국으로 데려왔다고 확신했다. 그는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늘 말했지만, 아니었다.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를 바라보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었다. 당신과 완전히 다른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유토피아로 나를 데려갔다. 아무런 대가 없이 나에게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말이다. 내가 그곳에 가면 고통에서 벗어나 당신처럼 편안함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 거다. 하지만 타인의 낙원이 내게도 천국이 될 수는 없다. 그곳은 내가 처음에 있던 곳보다 훨씬 불행한 세상이었다. 내 영혼은 비명을 지르며 와그르르 무너져 내렸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 호의는 당사자를 곤란하게 만들 확률이 높다. 다른 사람을 나의 방식으로 도와주려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부터 위도를 걷는 거다. 그는 당신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목적이 위로이든 조력이든 간에, 남의 세계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는 것은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도움을 주고 뿌듯함을 느끼는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다. 타인을 도와주고 싶다면 그가 손을 잡아달라고 요청을 할 때 두 손을 꼭 잡아주면 된다.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공감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단, 공감이 동정심으로 변하는 것만큼은 조심해야 한다. 그 순간 타인의 세계에 침범하게 된다. 혹시나 동정심을 무기로 나를 잡아두려는 누군가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그를 피하라. 그런 이들은 자신의 불행함을 계속 강조하며 더 큰 연민을 요구하고 어느 상황에서나 이해받기를 바랄 것이다.


나는 그를 따라 걸었던 물길을 되돌아가고 있다. 아직도 가슴까지 차오른 물속에서 걷고 있지만 나를 믿고 물의 흐름에 실려 가고 있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 줄 없이 혼자의 힘으로 걸어가 흙을 밟고 젖은 옷을 갈아입을 거다. 쨍쨍한 햇살에 몸을 말리고 다시 걸어 나갈 거다. 나는 지금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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