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 가장 효과적인 백신 '경험'
모든 경험은 나를 성장시킨다
코로나19가 성행 중이다. 설 명절이 지나면 바이러스 감염이 본격적으로 확산될 거라는 예측이 현실이 됐다. 길거리에도 버스에도 카페에도 하얀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붐빈다. 초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는 날에도 보기 힘들었던 광경이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를 실시간으로 발표하고 감염 원인과 이동 경로를 상세하게 업데이트하며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더불어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서 지켜야 할 수칙들도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가장 강조되는 예방 수칙은 청결이다. 외출 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흐르는 물에 30초 동안 비누칠 하나 손을 깨끗하게 씻을 것. 그다음으로 힘이 실린 단어는 면역력이다. 신체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바이러스가 몸에 쉽게 침투하기 때문에 충분한 수면과 꾸준한 운동,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을 챙겨 먹어서 면역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코로나19는 신종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다. 균에 대한 항체가 전혀 없는 사람이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자가 면역력으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지금도 신체 건강한 바이러스 감염자는 병원에서도 특별한 치료 없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퇴원하고 있다. 미국 마크립시치 하버드 대 전염병학 교수 말에 따르면 코로나19는 독감처럼 만성 질환자나 노인들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치료 안 한 채로 지나가는 경우도 많을 것이라 했다. 코로나19 감염자 중 14%는 아무 증상도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신체 면역력이 강한 사람은 병을 이겨내고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바이러스에 잠식당해 심각한 질환을 앓거나 죽는다. 그래서 코로나 바이러스 사망자 대부분은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나 기저 질환을 앓고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몸 안에 백신을 미리 투여해서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와 싸워 이길 수 있는 항체를 만드는 것은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다. 삶도 비슷하다. 인생에서 불시에 찾아오는 위기에 맞서고, 견디고, 돌아서 피해 가는 요령을 익히며 대처하기 위해 우리의 삶에도 백신이 필요하다. 최고의 백신은 경험이다.
"제가 평창 올림픽을 대비해서 피겨스케이팅을 배웠어요. 혹시 피겨 예능이 생기면 스케이팅을 할 수 있는 나를 불러주지 않을까? 김연아 선수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피겨를 배웠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한테 물어봐요. 고생해서 피겨 스케이팅을 배웠는데 피겨 예능이 생기지 않으면 어떡할 거냐고. 저는 이렇게 대답해요. 내가 스케이팅과 관련해서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나는 이 기회에 스케이팅을 배운 거고 피겨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거라고, "
신선한 충격이었다. 경험을 한 것 자체만으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코미디언 김영철의 발언을 통해 알았다. 그전까지는 내가 계단을 밟았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올라가야지만 계단을 올라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랐다. 돌이켜보면 계단을 끝까지 오른 경우는 드물었다. 아니, 없었다. 완주라는 게 사람마다 도착점이 다르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계단을 올라갈 '계획'을 하고 '실행'한다는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갈 땐 발의 어느 부위에 힘이 많이 들어가고, 어떤 신발을 신어야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으며, 나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했고, 계단을 오르면서 아래에 있을 땐 미처 보지 못했던 소중한 풍경도 눈에 담았다는 것을 늘 간과했다. 처음으로 발을 내디뎌 계단을 오르는 행위 자체가 위대한 것이었는데 눈에 보이는 결괏값이 없으면 경험까지 없는 셈 쳤다. 계단을 오름으로써 평지를 천천히 오래 걷는 게 나한테 맞는 방법이라는 걸 알아낸 것은 엄청난 수확이었는데 말이다.
경험을 남들과 차별화되는 결과물을 얻어서 나의 능력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수단으로만 생각한 탓에 수치화된 결과가 없으면 손에 쥔 것이 없다며 허탈해한 거다. 열심히 페달을 밟아 나갔는데 결국 나는 같은 자리에 있다고, 헛발질을 했다며 공허함을 느꼈다. 그 경험들이 내면에서 내공을 쌓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내 삶을 지탱해 준 것은 나의 노력은 언젠가는 보상받을 수 있다는 위안이었다. 무언가를 배우고 어떤 상황을 겪으면서 그때그때 얻는 배움이 내 삶을 지탱하는 면역력을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세기의 명언을 남긴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발명하기까지 1,200번이나 실패를 했다. 그리고 1,201번째 시도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1,200번의 실패를 한 게 아니라, 1,200번의 안 되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어느 누가 1,200번의 실패를 한 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대부분 자신을 책망하며 좌절할 것이다. 아니, 그만큼의 시도조차 못 해봤을 거다. 에디슨이 1,200번의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인류 최초의 백열전구를 발명할 수 있었을까? 그는 1,200번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고 1,200번의 안 되는 방법을 알아낸 경험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1,201번째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거다. 실패를 경험이라고 여긴 1%의 영감은 99%의 노력을 그가 원하는 결과물로 실현시켰다.
경험을 두려워하지 말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고 후회되는 과거의 선택이라도 그 속에 값진 배움이 있다.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에 발만 살짝 담가도 한계라고 생각했던 내 시야가 엄청난 각도로 벌어진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단단하고 풍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 두려운 마음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억지스러운 명목을 지어내 왔다. 낯선 편리함보다 익숙한 불편함이 좋다고 말이다. 이유가 있어서 결과가 있는 게 아니라 결과를 먼저 정해놓고 그에 맞는 구실을 만들었다. 지젝이 가장 경계하는 현상은 정체된 속박의 세계이고, 그가 추구하는 길은 불완전하지만 끝없이 혁신하는 주체에 의한 변화라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 오랫동안 안정된 세계는 실상 불안정하다는 거다. 비정상적인 상태를 정상적으로 보이게끔 하는 관성적인 상태일 가능성이 높고 썩어가는 고인 물과 다를 바가 없을 수도 있다. 이제는 경험을 하기 전과 같은 자리로 돌아오더라도 나는 성장했고 달라졌다는 것을 안다. 존재하는 자리는 같아도 그곳에 있는 나는 전과 다르기에, 같은 자리에서 내가 꿈꾸는 삶과 미래는 이전과 다르다. 내 한계를 만나서 다른 선택을 하든, 그것을 넘어서든, 내 자리로 돌아오든 모든 경험은 나를 성장시킨다. 혹시 실패한 결과물과 나를 향해 쏟아지는 독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나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여건이야말로 내 삶의 든든한 토대를 구축하는데 도움을 주는 소중한 환경이라고 생각하자. 몸 안에 백신을 투여해서 바이러스와 싸워줄 항체를 만들어 면역력을 키우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 풍부한 경험을 채워서 위기를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면역력을 쌓자.
우리의 삶에 가장 효과적인 백신은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