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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Mar 06. 2023

나를 수련하는 글쓰기

2023년을 글쓰기와 함께 시작했다.

1월 한 달간 매일 글을 쓰며 이렇게도 글을 써낼 수 있구나 하며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잠들기 전 내일의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아침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서 또 쓰고, 퇴근하고 혼자 카페에 가거나 서재에 박혀 글과 씨름했다.

그렇게 한 달을 버티며 100% 인증에 성공했다.


이제 나도 글 쓰는 근육이 조금은 생긴 걸까 하는 설렘과 함께 예전보다 좀 더 편하게 술술 써 내려갈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살짝 생겼다. 2월은 바쁜 일도 많을 듯하여 혼자서 틈틈이 글을 써보리라 다짐하며 글루틴 모임은 잠시 쉬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1월 31일의 인증을 끝으로 34일이 지나는 동안 오늘까지 딱 한 편의 글을 쓴 게 전부였다. 눈을 부릅뜨고 구석구석 살펴봐도 글쓰기 근육은 커녕 희미한 핏줄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

하긴 헬스장을 한 달간 매일 가도 몸에 큰 변화가 있기 힘든데 고작 한 달 글 쓰고 근육을 운운하는 걸 보면 그동안 얼마나 꾸준히 무언가를 해보지 않았는지 티가 팍팍 난다.


하기 싫은 모든 일의 처음엔 강제성이 좀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다시 글루틴 모임에 합류했다.

사실 아무 강제성도 없지만 톡방에 올라오는 동기들의 인증 글을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 오늘처럼 야근을 하고 9시가 넘어서 집에 온 날은 더 그렇다. 자정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

생각의 흐름대로 자판을 두드려본다. 썼다 지우는 것까지 합하면 A4로 몇 장은 썼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감이라는 게 나름 스릴 있고 어떻게든 마무리를 해냈을 때 온몸을 휘감는 짜릿함이 있다.

대단한 글도 아니고 오늘까지 꼭 써야 되는 글도 아닌데 난 왜 퇴근과 동시에 또 다른 노트북 앞에 앉아서 일분마다 거북목을 넣다 뺐다 하고 있는 걸까.


「글쓰기에는 어떤 것도 운 좋게 찾아오지 않는다. 글쓰기는 어떠한 속임수도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장 좋은 모습이 되었을 때에야 가장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모든 문장은 기나긴 수련의 결과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그렇다 난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모든 생각을 멈추고 책상에 앉는다.

하루동안 오르락내리락했던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히고 나 자신과 마주한다.

한 줄 한 줄 썼다 지웠다를 수십 번 반복하며 그곳에 꼭 맞는 단어를 찾고 최적의 조합으로 순서를 배열한다.


수련은 인격, 기술, 학문 따위를 닦아서 단련한다는 뜻이다.

글을 쓰면서 나의 부족한 인격을 인식하게 되고 조금씩 다듬고 단단하게 만들어 간다.

글쓰기로 하루를 돌아보며 대화의 기술, 관계의 기술, 시간활용의 기술을 배운다.

글을 읽고 쓰면서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것들을 알고 깨닫는다.  

그 모든 일들이 수련의 과정이고, 그 인고의 시간을 통해서만 결국 나만의 글 한편이 탄생한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통해 얻는 유익을 말하지만, 글쓰기는 그 행위 자체로 나에게 도움이 된다.

수련은 노력과 인내를 요하는 나와의 싸움이다. 그래서 수련을 즐겁게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수련이란 말에서는 자발성이 느껴진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건 수련이 되기 힘들고 효과도 높지 않을 것이다. 나를 단련시키고 성장시키기 위한 수련의 방법으로 글쓰기를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꾸준히 수련하는 것만이 남았다.


가족을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소년이 홀로 산에서 수년간 극한의 수련을 한다. 무술을 갈고닦으며 자신을 단련해 간다. 마침내 맨손으로 나무를 베는 무림의 고수가 되어 나쁜 넘들을 응징한다는 익숙한 스토리가 떠오른다.

Delete 키를 한 번도 누르지 않고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글이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장풍이 되어 한바탕 휘몰아치는 글쓰기의 고수를 꿈꾸며 3월 글쓰기 첫날을 수련하는 마음으로 비장하게 시작해 본다.


#글루틴 #팀라이트 #매일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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