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과 맛있는 것도 먹고 스트레스도 해소하는 시간이지만 요즘은 시작한 지 1시간만 지나면 왠지 집에 가고 싶어 진다.
오늘은 드디어 일찍 집에 왔다.
여유 있게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갑자기 걷고 싶어졌다.
지금의 이 상쾌한 기분에 포근한 봄기운까지 더해지면 어떤 상태가 될까 궁금해졌다.
마침 아들이 학원을 마칠 시간이라 서둘러 츄리닝을 입고 잠시 고민하다 마스크 없이 집을 나섰다.
외출할 때 마스크를 안 챙긴 건 3년 만인 거 같다. 나가기 전부터 감동이 밀려온다.
동네가 생각보다 고요했다.
큰길에서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단지라 차량 통행도 많지 않고 조용하다.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꽃봉오리들이 꽤 보였다.
봄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가슴이 설렌다.
아파트 단지 안에 노란색 산수유 꽃이 많이 보였다.
아들 학원이 8시 10분에 끝나는지 20분에 끝나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학원 버스를 타고 오는지 걸어오는지도 잘 모르겠다.
가까운 동네로 학원이 옮겨온 후로는 학원차 시간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래도 관심이 너무 없는 것 아닌가 살짝 반성도 해본다.
설령 길이 엇갈리는 일이 있어도 연락은 하지 않는다.
왠지 서프라이즈가 아니면 김새는 만남이 돼버릴 것만 같다.
문자로 확인하는 것보단 직접 마주쳤을 때의 감격이 훨씬 더 클 것이니.
얼마 전 뉴스에서 걸을 때 엄지발가락이 신발 천장에 닿아야 건강한 걷기라고 했던 게 생각났다.
잠시 발가락을 의식해 보다 이내 주위의 풍경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직 마스크를 쓴 사람이 절반 정도 된다.
남자어른 <여자어른 <아이들 순으로 마스크 쓴 비율이 높다.
역시 남자들은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다.
아파트 입구 횡단보도는 아주 짧아서 보통 빨간 불이라도 그냥 건너지만 맞은편에 서 있는 여중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멈춰 섰다. 마스크도 쓰고 있다. 아이들은 참 질서를 잘 지킨다. 시키는 건 그대로 한다.
역시 어른들이 문제다.
최근 상가가 들어서고 가게들이 입주하고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새로운 업체들이 속속 생기고 있다. 근데 상가마다 병원은 빠짐없이 있다. 심지어 치과는 100m 반경 안에 10개는 되는 것 같다. 병원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병원에 가면 늘 대기를 한다. 의사들도 많아졌지만 아픈 사람들은 더 많아진 것 같다. 이번에 S대 공대에 합격했지만 의대를 가기 위해 재수를 한다는 조카가 문득 떠올랐다.
학원에 도착하니 아들이 학원버스에 타고 있었다.
역시 크게 반가워하는 기색은 없다.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 좋아하는 것 같다.
보자마자 먹을 거를 찾는다. 아들의 최애는 메X커피와 편의점이다.
오늘은 편의점이었다. 2+1 하는 컵밥과 떡볶이, 생크림빵, 커피우유 2개를 샀다. 19,300원이다.
거의 식당에서 밥 먹는 비용이라 잠시 놀랐지만 아들의 흐뭇한 표정을 보니 20만 원도 사줄 수 있을 것 같다.
저렇게 많이 샀는데 비닐봉지가 필요 없다 하니 친절한 아줌니가 컵라면 박스에 넣어주심
며칠 전부터 복숭아뼈 쪽이 아프다며 절뚝거렸다. 그리고 왼쪽 눈은 실핏줄이 터져 며칠째 빨간 상태였다.
오늘 할머니랑 병원을 갔더니 속눈썹이 눈을 찔러 그렇다며 핀셋으로 속눈썹을 4개 뽑는데 아파서 혼났다고 했다. 다리는 '부주상골증후군'이라고 안쪽 복숭아뼈 밑에서 앞쪽으로 뼈가 튀어나오고 통증이 생기는 병으로 유병률은 10% 정도란다. 농구를 좋아하는 아들이 맘껏 못 뛸 거 같아 속상하다.
시작은 봄의 기운을 느끼기 위한 산책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아들을 마중 나가 편의점 가서 패스트푸드만 한 보따리 사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