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거의 매일 작업을 했다. 훈련장 보수와 진지 구축으로 삽질이 일상이었고 제초작업을 위한 낫질도 그에 못지않았다.
서툴렀던 나에 비해 시골 출신인 후임 2명은 삽질이며 곡괭이며, 예초기까지 능숙하게 돌렸다. 그때는 시골에서 자라지 못한 게 원망스러울 정도로 후배들이 부러웠다. 제대 후에 더 이상 내 인생에 삽질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 덕분에 다시 삽을 들게 되었다.
벌써 해가 뜨거워 낮에는 일하기가 힘들다.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에 2~3시간씩 일하는 게 전부다. 어디 갖다 파는 것도 아니고 누가 머라 하는 것도 아니지만 200여 평의 밭에 무언가를 심고 거둬야 한다는 의무 아닌 의무만으로 시골의 삶은 고되다.
손가락까지 관절이 닳고 허리도 아픈 할머니 혼자 하기엔 벅차다.
하지만 본인의 사명인 것처럼 묵묵히 집안일과 밭일을 홀로 감당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남편 뒷바라지에 자식들 다 키우고 손주들을 돌보다가 이젠 200평의 밭의 보호자가 되었다.
참으로 고된 인생이다.
집을 팔고 서울로 가자고 말씀드려도(물론 쉽게 팔리지도 않겠지만)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때가 아직 아니라고.
엄마가 말한 그때는 살아생전엔 안 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저 나에게 주어진 하루의 일들을 부지런히 해내며 살아간다.
일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오려다 화장실에서 넘어졌다. 바닥에 비눗물이 남아있었는지 순식간에 미끄러지면서 왼쪽 팔과 허벅지가 부딪쳤다. 30cm만 더 옆으로 갔다면 변기에 머리를 박았을 거고 옆이 아니고 뒤로 넘어졌다면 머리가 깨졌을 거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몇 차례 목숨을 건진 일이 떠오른다. 졸음운전에 2~3초 정신을 잃고 옆차선을 넘어가기도 했고 심지어 앞차를 박은 적도 있다. 어릴 적 놀이터 담을 넘다가 머리부터 떨어진 일도 있고 바다에 놀러 가서 사진을 찍다 5m 이상 되는 바위 위에서 밀려 떨어지기도 했다.
9개의 목숨을 가지고 있다는 고양이도 아니도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기적적으로 아직 살아있다.
억울한 죽음이 얼마나 많은가.
허무하고 황당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아직 살아있다.
직장을 5번이나 옮겼다.
머든 쉽게 시작하지만 금방 싫증내고 그만두는 나에게 시골에서의 어머니의 일상은 참으로 귀감이 되는 삶의 태도이다.
지루하고 하기 싫은 일들이지만 매일 해낸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순종하며 내 일이라고 믿고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한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일이, 더 큰일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매일을 살아간다.
오늘도 죽을 고비를 또 한 번 넘겼다.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가 그 시작이며 끝일수 있다.
내가 있는 직장과 관계들. 그 안에서의 내 자리와 역할.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할 일이자 내가 살아있는 이유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