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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Apr 17. 2024

오늘도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할 일이 아직 남았기에..

총선부터 창립기념일까지 중간에 하루만 연차를 내면 주말까지 무려 5일의 황금연휴다.

귀촌을 꿈꾸며 아무런 연고 없는 강원도 영월에 집을 지으신 후 5년 만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

아버지도 억울하지만 자의와 상관없이 외딴곳에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무슨 죄란 말인가.

운명공동체인 부부. B형 간염 보균자인 남편의 건강을 제대로 체크 못한 게 죄라면 죄일 것이다.

물론 아들과 딸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평생.


배우자와의 이별이라는 측량하기 힘든 슬픔이 고통이 되어 몸과 마음을 사정없이 짓눌렀을 것이다.

그 시절 수화기 너머 멀리서도 어머니의 슬픔이 절절이 느껴졌다.

한 달에 한 번은 시간을 내어 혼자 계신 어머니를 뵈러 영월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자식 된 도리이고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드린 죄책감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반년 정도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일정이 겹치면서 지속하기는 쉽지 않았다.

엄마의 슬픔도 무뎌졌고 나의 안타까움도 무뎌졌다.

5년이 지났다. 작년 추석 이후로 6개월 만의 방문이다.




엄마 밥을 먹은 게 30년, 장모님 밥을 먹은 게 15년째다. 아내 밥을 먹은 건 1년쯤 되려나.

아무튼 영월이 좋은 점은 엄마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밭에서 바로 올라온 신선한 재료가 50년 주방생활 달인의 손맛으로 재탄생한다.

먹고 자고 일하고 먹고 자고 일한다. 하루가 단순하다. 그래서 시간도 잘 간다.

시골은 좋다. 하지만 시골 일은 싫다. 밭을 일구고 비닐을 깔고 잡초를 제거하고 땔감도 준비한다.

처마밑에 숨어있는 새집과 나방들도 제거해야 한다. 배수로도 정비하고 나무도 잘라줘야 한다. 감자도 심고 깨도 심고 파, 부추, 고추도 심는다. 두릅도 따고 쑥도 캐고 감도 딴다.

1년에 2~3번 2~3일씩 일하는 내가 하는 일은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미미하다.

심지어 허리도 안 좋고 일도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다.




군대에서 처음 삽질과 낫질을 해봤다.

논산에서 박격포 교육을 받고 부산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터라 훈련이 별로 없었다.

사거리가 4km에 불과한 박격포를 왜 부산으로 보냈을까.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그래서 거의 매일 작업을 했다. 훈련장 보수와 진지 구축으로 삽질이 일상이었고 제초작업을 위한 낫질도 그에 못지않았다.

서툴렀던 나에 비해 시골 출신인 후임 2명은 삽질이며 곡괭이며, 예초기까지 능숙하게 돌렸다. 그때는 시골에서 자라지 못한 게 원망스러울 정도로  후배들이 부러웠다. 제대 후에 더 이상 내 인생에 삽질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 덕분에 다시 삽을 들게 되었다.




벌써 해가 뜨거워 낮에는 일하기가 힘들다.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에 2~3시간씩 일하는 게 전부다. 어디 갖다 파는 것도 아니고 누가 머라 하는 것도 아니지만 200여 평의 밭에 무언가를 심고 거둬야 한다는 의무 아닌 의무만으로 시골의 삶은 고되다.

손가락까지 관절이 닳고 허리도 아픈 할머니 혼자 하기엔 벅차다.

하지만 본인의 사명인 것처럼 묵묵히 집안일과 밭일을 홀로 감당하며 일상을 살아간다.

뒷바라지에 자식들 다 키우고 손주들을 돌보다가 이젠 200평의 밭의 보호자가 되었다.

참으로 고된 인생이다.

집을 팔고 서울로 가자고 말씀드려도(물론 쉽게 팔리지도 않겠지만) 아직 이곳에서 할 일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때가 아직 아니라고.

엄마가 말한 그때는 살아생전엔 안 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저 나에게 주어진 하루의 일들을 부지런히 해내며 살아간다.




일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오려다 화장실에서 넘어졌다. 바닥에 비눗물이 남아있었는지 순식간에 미끄러지면서 왼쪽 팔과 허벅지가  부딪쳤다. 30cm만 더 옆으로 갔다면 변기에 머리를 박았을 거고 옆이 아니고 뒤로 넘어졌다면 머리가 깨졌을 거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몇 차례 목숨을 건진 일이 떠오른다. 졸음운전에 2~3초 정신을 잃고 옆차선을 넘어가기도 했고 심지어 앞차를 박은 적도 있다. 어릴 적 놀이터 담을 넘다가 머리부터 떨어진 일도 있고 바다에 놀러 가서 사진을 찍다 5m 이상 되는 바위 위에서 밀려 떨어지기도 했다.

9개의 목숨을 가지고 있다는 고양이도 아니도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기적적으로 아직 살아있다.

억울한 죽음이 얼마나 많은가.

허무하고 황당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아직 살아있다.




직장을 5번이나 옮겼다.

머든 쉽게 시작하지만 금방 싫증내고 그만두는 나에게 시골에서의 어머니의 일상은 참으로 귀감이 되는 삶의 태도이다.

지루하고 하기 싫은 일들이지만 매일 해낸다.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순종하며 내 일이라고 믿고 감사함으로 최선을 다한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일이, 더 큰일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매일을 살아간다.

오늘도 죽을 고비를 또 한 번 넘겼다.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가 그 시작이며 끝일수 있다.

내가 있는 직장과 관계들. 그 안에서의 내 자리와 역할.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할 일이자 내가 살아있는 이유라 믿는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냈다.

내일이 나에게 선물로 주어진다면 다시 또 최선을 다해야겠다. 기쁨과 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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