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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Apr 10. 2024

오늘도 벚꽃 엔딩

몰라봐서 미안하다

전국이 벚꽃으로 가득한 주말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쌀쌀한 날씨에 앙상한 가지만 있었는데 불과 2~3일 새 온 세상이 벚꽃으로 물들었다.

20년쯤 전에 친구들과 여의도 운중로에 벚꽃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수많은 인파에 휩쓸려 벚꽃보다 사람을 더 많이 봤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벚꽃을 보러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어디서든 쉽게 화려한 벚꽃을 만날 수 있다.

오히려 사람이 없는 한적한 동네 벚꽃길이 좋다.

아내와 함께, 가족과 함께 하는 벚꽃 산책길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아무리 힘들고 마음이 안 좋은 날이라도 사랑하는 가족과 만개한 벚꽃 길을 걷는다면 마음이 녹아내리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벚꽃을 볼 수 있는 날은 1년 중 2주에 불과하다.

거리에 수많은 벚꽃들이 단 2주를 위해 1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니 너무 비효율이다.

가성비가 매우 떨어진다.


하지만 봄과 함께 슬며시 다가와 순식간에 눈부신 꽃잎 옷으로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모습은 감히 가성비를 운운하지 못하게 만든다.

1년 치 효과를 2주 안에 다 뽑아내고도 남으니 오히려 가성비가 높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막 만개하고 있지만 앞으로 1주일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벚꽃을 생각하면 벌써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나무 한 그루에서 피는 꽃은 셀 수 없이 많다.

마치 조화처럼, 그림처럼 풍성하게 가지를 뻗고 하얀 꽃을 피워낸다. 

나무 아래 있으면 마치 우주에 있는 것처럼 광활하고 황홀하다.


하지만 꽃이 피기 전엔 몰랐.

이 나무가 이렇게 멋진 벚꽃이었단 사실을.

출근길에, 퇴근길에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몰라봐서 미안하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있는 나무였는지 몰랐다.

너무나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선 안된다고 하나보다. 언제 화려한 꽃망울을 터트릴 인생일지 누구도 알 수 없으니 말이다.

화려한 꽃잎도 이제 다음 주면 떨어지기 시작할 거다. 그리고 1주일 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사람들의 관심과 환호에 집중한다면 벚꽃은 누구보다 슬프고 우울한 삶을 살지 모른다.

1년에 2주간 열광하던 사람들이 1년에 52주는 쳐다도 안 본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는 자괴감이 들 것이다.


오늘 완성해야 하는 보고서 때문에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하다. 밤에 자다가 잠깐 깼는데 바로 보고서 생각이 나서 슬펐다. 그깟 보고서가 뭐길래 내 머릿속을 온통 장악하고 있는 것인지.

오늘도 벚꽃 같은 하루를 살아간다.

4월이 아닌 평상시의 벚꽃.

너무도 평범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벚꽃나무같이 어제와 똑같은 하루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우주같이 크고 아름다운 내면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울고 웃고 우울하고 즐겁던 평범한 일상이 쌓여 꽃은 피어날 것이다.


1년에 2주는 너무 짧다.

하루하루를 벚꽃같이 화려하게 꽃 피우고 싶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다시는 피지 못할 것처럼.

일말의 후회도 남기지 않도록.

내 모든 힘을 다해 나를 드러내고 싶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뜨겁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도 벚꽃엔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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