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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Jun 25. 2022

아모르파티가 필요할 때

아모르파티.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으로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용어다.


살아가면서 참 위로가 되는 말이다. 아무리 정직하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도 세상이 나를 속이고 배신하는 것 같았던 경험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어떤 상황에서도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후회 없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종종 과거에 이렇게 했었더라면 하는 가정을 해보곤 한다.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거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할 때는 더욱 그렇다. 학교 다닐 때 조금 더 열심히 공부했다면 직장이 달라졌을 수도, 배우자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 공부를 그만큼만 한 것도 내 선택이지 않은가. 누가 강제로 못하게 한 건 아니니까.


아내는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만약 나랑 헤어지고 다른 여자를 만났다면 자신을 기억에서 잊었을 거냐고. 이 무슨 의미 없고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질문인가. 그냥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운명이다. 지금과 다른 과거나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5년 전쯤에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에 청약을 넣기로 했다. 단지에서 가장 입지가 좋은 P 브랜드에 청약을 넣기 위해 신청 장소를 찾아갔다. 그날이 청약의 마지막 날이고 마감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 줄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었고, 청약통장 가입 기간 만점에 무주택 기간도 길어서 어마어마한 점수를 보유하고 있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서울 어디라도 합격할 수 있는 점수였지만 그때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청약통장의 명의자와 세대주가 동일해야 청약이 가능함을 내 차례 3번째 전에서야 확인하게 되었다. 청약통장의 명의자는 나, 세대주는 아내였던 것이다. 나는 나의 무지를 한없이 질책하며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야 했다.


결국 단지에서 2순위였던 현재의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고 한동안 아내와 나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다투곤 했다. 아파트의 입지와 품질에서 차이가 나다 보니 시세도 좀 차이가 난다. 퇴근하며 아파트를 볼 때마다 그때의 한심한 내가 떠오르며 아쉬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이럴 때 바로 아모르파티가 필요하다. 그 당시 머리 아픈 일들이 많아 청약에 제대로 신경을 못 썼던 상황도, 부동산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2순위 아파트라도 분양받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나의 운명이다. 대신 우리 아파트는 5동이 동그랗게 이어져 있는 작은 단지라 놀이터와 공원이 한눈에 들어오고, 이웃 간에도 서로 먼저 인사하는,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아파트이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난 특별한 재능이 없다. 악기가 너무 배우고 싶어서 기타 학원, 피아노 학원도 다녀봤지만, 첫 고비를 넘지 못했다. 독학으로 곧잘 치는 사람들 보면 난 정말 음악적 재능이 없구나 깨닫게 된다. 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고 다 그냥 평범한 수준이다. 언제든 마음먹고 열심히 하면 뭐든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마음먹기 전에 이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끈기 없고 독하지 못한 내 성향도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대신 호기심이 많아 두루두루 경험해 볼 수 있었으니 그게 어디인가.


내가 업무를 맡으면 그때부터 숨어있던 이슈들이 여기저기서 터진다(사실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보고할 때는 해야 할 말들이 꼭 끝나고서야 생각이 난다. 늘 남들보다 일이 많고 야근도 많다. 이 또한 긴장을 잘하고, 싫은 소리는 못 하면서 희생정신만 강한 나의 성향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적이 없고 성실하다고 인정받기도 하니 운명에 좋고 나쁜 건 없는 것 같다.


나는 귀가 얇아 남의 얘기에 혹해서 손해를 보기도 하고, 쇼핑할 때는 호갱으로 비싸게 사는 어리숙하고 마음이 약한 인간이다. 하지만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교훈은 얻었으니까 손해 본 것만은 아니지 않는가.


내 의지적인 선택이 모인 결과가 나의 운명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운명은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과거의 선택들이 모여 현재의 내가 있다. 고로 운명은 현재고, 현재는 운명이다.

운명을 사랑하려면 현재의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나의 부족한 점은 인정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소중히 여기고 아껴야 한다. 그것은 결국 자기 삶을 자기 손으로 헤쳐 나가고자 힘쓰는 그 의지를 사랑하자는 것이다.


힘들어도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

우울해하지 말고 나에게 화내지도 말자.


오늘도 ‘내 운명’을 사랑하기 위해 삶의 순간순간 애쓰고 있는 ‘나의 의지’가 있다면 이미 그걸로 충분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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