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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Oct 08. 2022

카카오 블랙을 탔다

회식이 끝날 때쯤 다 같이 카카오로 택시를 부르는 게 일반화된 요즘이다.

택시 얘기만 나오면 두 명의 직장 선배가 떠오른다.

간이 아무리 늦어도 절대 택시를 타지 않고 버스를 이용하던 Y선배. 집이 같은 방향이라 회식이 끝나면 늘 힘들게 걸어서 같이 버스를 타곤 했다. 외제차 두 대와 마포에 아파트를 소유한 분이었지만 본인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소비는 철저히 통제하는 매우 짜디짠 캐릭터였다. 팀장이 된 지금도 한결같다.

반대로 회식 때마다 후배들 택시비를 챙겨주던 S선배. 지갑엔 항상 현금이 두둑했고 후배들에게 막무가내로 택시비를 쥐어주시곤 하셨다. 그분은 40대 중반에 퇴직하셨고 집도 아직 전세로 산다. 

어느 쪽이 옳다는 건 아니다. 그저 다들 마음이 가는 대로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갈 뿐이다.

당연히 짜디짠 선배를 좋아하는 후배는 없지만 택시비가 아까운 건 사실이다. 나도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피곤하고 돈보다 시간이 더 아깝다는 생각에 종종 택시를 이용하곤 한다.


그날은 삼각지역 인근에서 오랜만에 예전 J팀장님과 H후배를 만났다.

J팀장님은 14년 전에 고작 3개월 같이 일했을 뿐이지만 아직도 연락을 할 정도로 의지가 되는 분이다.

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시고 추진력도 으뜸이라 배울 점이 많다.

둘과 안면이 있는 아내도 직장이 멀지 않아 퇴근 후 2차에 합류해서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팀장님이 가시고, 나 몰래 3차를 모의했던 후배와 아내의 꼬임에 넘어가 맥주를 한잔 더하러 갔다. 금요일 밤의 여유를 만끽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담소를 나눴다.


새벽 1시가 되어 갈 때쯤 카카오로 택시를 부르는데 콜이 잡히지가 않았다. 요금은 2만 원 남짓이었다.

몇 번을 다시 불러봐도 잡히지가 않아 걱정하고 있는데, 후배가 해보겠다고 하더니 금방 택시를 잡았다고 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하며 나가서 기다리는데, 모델도 알 수 없는 검은색 고급 세단이 우리 앞에 슬그머니 멈춰서는 것이다. 넥타이를 맨 기사가 내리더니 정중하게 문을 열어주었다. 당황한 나에게 후배는 블랙을 불렀다고 했다. 말로만 들어본 블랙은 겉만 봐서는 택시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름 그대로 그냥 블랙이었다.

조수석은 앞으로 완전히 접혀있어 실내는 더 널찍해 보였고 왠지 모를 평온함과 따뜻함을 느끼며 포근한 좌석 속으로 스며들었다.


도대체 블랙은 얼마나 하는지 궁금해서 삼각지에서 집까지 다시 조회를 해보니 12만 원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난 내 눈을 의심했다. 기껏해야 일반택시의 2~3배라고 생각했는데 무려 6배였다.

회사에서 1박 2일 교육으로 양평에 갔다가 둘째 출산 소식에 급하게 밤에 택시를 불러 강북삼성병원까지 올 때도 10만 원에 왔었는데(기사분이 졸음운전을 해서 확실히 기억한다), 고작 30~40분 거리에 12만 원이라니.

조회해보니 중간에 블루도 있고 모범도 있는데 왜 다 건너뛰고 한 번에 블랙까지 간 것인지 너무 속상했다.

속상한 마음도 잠시, 한숨 푹 자고 나니 어느덧 집 앞이었다. 도착해서도 황송하게 기사님이 문을 열어주셨다. 내리자마자 후배한테 문자가 왔다.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문자를 받았단다. 후배의 스타일을 너무도 잘 아는지라 잔소리는 생략하고 고맙다며 하트를 날려주었다.




우리의 인생은 참 짧다. 애들 빼고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뼈저리게 공감되는 사실이다.

열정적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많은 순간의 짜릿함과 감동도, 아쉽지만 세월 속에 조금씩 희미해져 간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의 오감을 심하게 자극해 뇌리에서 절대 잊히지 않는 기억도 있다.

오늘 또 하나의 기억이 뇌리에 새겨졌다. 블루나 모범이었다면 희미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블랙이다.

블루나 모범은 기사가 콜을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지만 블랙은 콜을 하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차가 무조건 콜을 잡는 시스템이었다. 그야말로 돈이 넘치는 최상위 클래스만 이용할만한 진짜 플렉스다.

나중에 조회해보니 블랙은 일반택시의 3~4배 가격이라고 하는데, 그날의 블랙은 대체 어떤 블랙이었길래 6배나 받은 건지 너무 궁금하다.


후배와 나는 5년을 함께 일했다.

대리 2년 차일 때 내 부사수로 입사한 후배는 면접 때 성대모사로 딱딱한 면접관들을 무장해제시켰을 정도로 독특한 친구였다. 신입 사원답게 서투름 투성이었지만(PPT에 글 쓰는 방법도 몰랐다) 매사에 열심이고 예의 바른 모습으로 금방 선배들의 마음을 샀다. 무엇보다 밝고 유머러스했다. 나와 코드가 찰떡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업무 특성상 우리는 늘 많은 직원들과 함께 했고, 그 사람들의 중심에 우리가 있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든 무대였다. 환상적인 티키타카였다. 5년이 버라이어티 했고 축제의 연속이었다(적어도 우리 둘은 그랬다).

하지만 똑같은 ENFP인 우리의 불꽃이 사그라들기에 5년은 충분했다. 둘 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이지 못했다. 그야말로 무식하게 일하고 끝까지 놀았다. 마지막 젊음을 불태웠던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지쳐 갈 때쯤 조직이 바뀌고 후배는 개인적인 일이 겹쳐 이직을 하게 되었다.

 

서로를 너무 잘 알다 보니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든든했다.

지금은 떨어져 있고 자주 연락하지도 못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변함이 없다.

직장에 영원한 내 편은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팬이고 어려움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갈 든든한 내 편이다.

부끄럽지만 후배는 어디서든 나를 멘토라고 얘기해준다. 업무 스타일을 가장 많이 배우고 닮게 된 사람이라고. 그래서 자기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일한다고 농담처럼 얘기하곤 한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후배의 모습(지금은 PPT 스킬이 최상급이다)에 나도 참 많은 도전을 받았고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서로의 에너지를 화학반응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매우 긍정적이고 따뜻하면서 신나는 오렌지색 불꽃같은 느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택시를 탈 때도 돈 계산부터 하는 나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블랙을 잡아 준 후배.

처음에 언급한 두 선배가 다시 떠오른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인생의 짜릿함과 감동의 순간들.

돈 몇 푼 더 쓰더라도, 설령 그로 인해 짜디짠 사람들보다 경제적으로는 덜 부유한 인생일지 몰라도 마음만은 재벌 부럽지 않은 멋있는 인생을 선택하고 싶다.


40대 중반에 블랙을 태워주는 후배가 있다는 것만으로 꽤 성공한 인생이지 않을까.

그것도 그리 부유하지 않은 후배가 앞뒤 계산하지 않고, 나와 아내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만으로 그랬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가슴이 벅차다.   


원래 입에 발린 말은 절대 못 하는 편이다.

그래서 영화에 자주 나오는 대사 같지만 후배에게 진심으로 한마디 전한다.  

너와 함께 진심을 다해 일했던 그 시간들이 나에겐 행운이었고 영광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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