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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Jul 05. 2022

첫 상사의 죽음

온 세상이 평화로운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있던 주말 오전. 

회사 선배로부터 부고 문자를 전달 받았다. 2008년 경력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나의 첫 상사였던 K 차장님이었다. 올해 나이가 56세쯤 되셨을까. 몸이 좀 안 좋으시다는 건 들었지만 정말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내가 입사했을 때 K 차장님은 파트리더였다. 우리 파트는 총 5명이었고, 2개의 파트가 모여 팀을 이루고 있었다. 업무의 80%는 파트리더에게, 대략 20%는 팀장까지 보고하면 되는 일이었다. 파트원일 땐 파트리더가 전부다. 파트리더가 되면 팀장이 전부고, 팀장이 되면 임원이 전부다. 말 그대로 상사가 곧 회사인 것이다.  


회사에서 첫 상사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앞으로 이 회사에서 어떻게 업무를 해나가야 하는지, 조직 생활은 어떻게 는 것인지, 많은 부분을 첫 상사에게 배운다. 상사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매일같이 욕하던 동료들이 나중에 똑같은 스타일로 일하고, 후배들을 대하는 걸 보면 소름이 돋기도 한다. 반대로 이 회사가 다닐만한 회사인지, 나에게 맞는 회사인지도 첫 상사를 통해 어느 정도 판단을 내리게 된다.




K 차장님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직장 경력이 5년이 넘었지만, 절반만 인정받아 사원 3년차로 입사했다. 연차에 비해 나이가 많고 관련 업무 경험도 많지 않았던 나는 선배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처음으로 맡은 업무가 이슈가 많다 보니 부서에서 퇴근이 가장 늦는 직원이란 이미지로 조금씩 동료들의 호감을 사기 시작했다. 직장에선 일 많이 하는 동료가 인기가 많다. 그게 어떤 일이든 나보다 더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사람이 괜히 좋아지곤 한다.

일은 많고 아는 건 없어 하루하루가 쉽지 않았다. 파트리더였던 K 차장님이 늘 따뜻하게 지켜봐 주시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셔서 버틸 수 있었다. K 차장님은 절대로 업무에 대해 파트원들을 압박하지 않으셨다. 지시할 일이 있으면 우리 자리 뒤를 왔다 갔다 하시면서 혼잣말같이 중얼거리셨다. 파트원들은 퀴즈를 풀듯 귀를 쫑긋 세워 차장님이 필요한 자료를 알아내곤 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입이 허접한 보고서를 만들 때까지 기다려주시고 격려해주셨다. 선배가 되니 후배에게 지시한 업무에 대해 말없이 기다리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극도로 내향적인 성격에 싫은 소리를 못 하셔서 기다려주신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상사가 되어 후배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한다는건 조직 생활에서 치명적인 결함이다. 후배들은 좋아할지 몰라도 윗분들에게는 너무 큰 마이너스 요소다. 매일같이 팀장에게 지적받고 동료들의 눈총을 받던 K 차장님은 겨우 40대 중반에 퇴직을 결정하셨다. 그때 그 마음이 얼마나 처량하고 공허하셨을까. 이제서야 아무런 위로를 못 해 드린 거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사무실에서는 늘 조용하고 존재감 없으신 K 차장님이었지만, 체내에 알코올이 흡수되기 시작하물 만난 고기마냥 잠시도 쉬지 않고 즐겁게 떠들어 대셨다. 주로 신입사원들, 그중에서도 기숙사에 거주하는 사원들이 주로 희생양이 되어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를 새벽까지 들어주어야만 했다. 술 한잔, 담배 한 모금(그 당시만해도 술집에서 흡연이 가능했다)에 사무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개똥철학을 설파하셨다. 그것은 업무 얘기였지만 이상적이었고, 삶에 대한 얘기였지만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대체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메시지여서 싫지만은 않았다. 집중해서 이야기를 쫓아가다가 어느 순간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였지만, 왠지 모를 측은함과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그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긴 힘들었다. 술자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그 자리엔 늘 맥주와 땅콩이 있었다. 지금도 땅콩을 보면 제일 먼저 K 차장님이 떠오른다.


K 차장님은 권위적이고 지시하는 리더가 아니라, 비전을 제시하고 후배들에게 위임하려고 노력했던 괜찮은 리더였다고 생각한다. 단지 시대를 너무 앞서갔고, 조직에 다소 맞지 않는 성향 때문에 직장생활이 순탄치 않으셨다. 새벽까지 술을 드시고 사무실이나 차에서 주무시는 일이 많았고(트렁크에는 늘 침낭이 있었다), 오전에는 숙취에 찌든 모습으로 힘겹게 자리에 앉아 계시곤 했다. 과도한 흡연으로 검지와 중지 사이는 노랗게 물들어 있었고, 며칠은 감지 않은 것 같은 머리에는 늘 비듬으로 덮여 있었다. 부부간에 불화가 심해 이혼 직전까지 갔다고도 들었다. 퇴직하시고 얼굴이 많이 좋아 보이셔서 이제 평범하게 가족들과 잘 지내시길 바랐다. 한 번쯤 뵙고 싶었는데 결국 부고 소식으로 마지막 안부를 듣고 말았다.




그분은 세상을 떠나기 전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매일같이 술로 보낸 시간, 상처 가득한 부부관계, 인정받지 못했던 회사생활, 그 모든 것들을 후회하셨을까? 죽음마저도 담담히 받아들이셨을까? 아니면 못다 한 꿈이 있어서 아쉬우셨을까? 안타깝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분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은 그분을 어떤 분으로 기억할까? 뭔가 아쉽다. 더 많이 공감받고 사랑받는 인생이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분의 삶도 그 나름의 의미와 목적이 있었음을 믿는다.

그래야 죽음 앞에 우리는 그분에 대한 좋은 기억을 추억하고, 우리의 인생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죽음 뒤에 대체 무엇이 소용이 있겠는가.

단지 생명이 숨 쉬는 이 짧은 시간 동안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후회 없이 사랑하고, 또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죽음 앞에 평안하리라 믿고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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