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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Jul 12. 2022

퇴행의 시작

자고 일어났는데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걸을 때마다 허리에 통증이 왔다. 힘겹게 하루를 버티고 퇴근 후 동네 정형외과에 갔다. 진료를 보고 X-ray를 찍었다. 퇴행성 허리디스크.

허리디스크는 워낙 흔한 질병이니 놀라지 않았지만 앞에 세 글자에 마음이 무너졌다.


얼마 전부터 핸드폰 글씨도 흐릿하게 보이는 게 노안이 시작되었나 생각했는데 허리까지 퇴행이라니. 디스크가 아래로 갈수록 간격이 멀어져야 하는데 들쭉날쭉이고, 눈에 띄게 휘어진 상태라고 했다. 3개월 정도 치료를 해보고 다시 사진을 찍어보자고 한다. 주사를 맞고 침을 맞았더니 허리는 펴졌지만 계속 통증이 있었다. 앉아 있을 때도, 누워 있을 때도 계속해서 자세를 바꿔줘야 했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시들고 병들고 늙어간다. 40줄에 들어서면서 체력이 확 떨어졌다는 걸 느꼈다. 40 중반이 되니 오후 3시만 되면 업무를 보기 힘들 정도로 피로가 몰려왔다. 몇 살 차이 안 나던 선배가 "내가 그 나 때는 돌도 씹어먹었다"는 얘기가 이제 실감이 다.


이런 몸 상태로는 내 평생 다시는 축구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남자라면 누구나 멋진 드리블로 결승골을 터트리는 상상을 해봤을 거다. 한 번도 그라운드의 주인공이 되어보지 못한 채 내 생애 축구 경기는 끝났다. 군대를 제대해서 춤을 잘 추고 싶다는 열망으로 댄스학원에 찾아간 적이 있다. 대부분 중, 고등학생들로 가득 찬 수업에서  자신감을 잃었고 생각보다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던 적이 있다. 무대 위 멋진 댄스 공연의 주인공 또한 이번 생애 끝났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조지 버나드 쇼의 기막힌 명언이 생각난다.

젊음이 넘쳤던 그때는 자유롭고 가능성이 넘쳤다. 하지만 너무 가벼워 날아갈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퇴행이 시작된 요즘은 반복되는 직장생활과 가장의 무게가 버겁고 팍팍하지만 두 발로 걷고 있어 그때에 비해 안정감은 있다.




인생은 누가 먼저 철이 드는지가 중요하다.

젊음과 인생의 소중함을 빠르고 깊이 느낄수록 더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철이 든다는 건 세상 물정을 알아 버려서 시작하기 전에 포기하고, 얘기 듣기 전에 판단하고, 싸워보지도 않고 백기를 드는 일이기도 하다.

비록 몸은 퇴행이 시작되어 이제 축구나 댄스는 틀렸지만 아직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50,60대 선배들이 이 글을 본다면 똑같이 '그때가 좋을 때다'라고 말씀하시겠지.


그래 우리 인생은 늘 좋았었다.

지나고 보면 언제나 그때가 우리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이었다. 나는 철들고 싶지 않다. 지상이 천국인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기억하고, 마음껏 사랑하리라.


육체는 풀과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겠지만, 마음은 항상 싱그러운 풀내음을 간직한 푸르른 풀잎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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