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든 일단 경험해 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험은 지식을 이기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많은 경험, 독특한 경험의 소유자들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고 동경의 대상이 된다.
어릴 때는 부모님에 의해 경험의 양과 질이 결정된다.
놀이동산에 가고 동물원에 가고 비행기를 타봤는지는 전적으로 부모님의 역량이고 선택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넘어가면 이제 스스로 경험의 주체자가 된다.
야동을 보고 이성친구를 사귀고 노래방을 가고 클럽에도 가본다. 각종 아르바이트도 한다.
내가 못해본 경험을 해본 친구들을 보면 왠지 멋있고 어른스러워 보인다.
집, 학교, 학원만 반복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살면서 때에 맞는 경험들을 하게 된다.
경험은 빨리할수록, 그리고 많이 할수록 좋은 걸까.
경험이 빠르고 많은 친구들은 대체로 빨리 철이 든다. 분별없이 굳이 안 좋은 경험들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내 안의 열정에 의한 건전한 경험 추구는 권장할 일이다.
빨리 철이 들수록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경험의 시기나 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경험의 질이다.
경험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첫째, 경험에는 최소한의 기간이 필요하다.
중학교 시절 모래시계 열풍에 이정재를 꿈꾸며 검도학원을 등록했고 내 검도인생은 노란띠에서 막을 내렸다.
테니스 레슨은 여름에 너무 더워서, 유도학원은 너무 힘들어서, 수영은 물이 너무 차가워서 모두 3개월을 넘지 못했다. 기타는 굳은살이 생기기까지 손이 너무 아파서, 피아노는 점점 어려워져서 역시 6개월을 넘지 못했다. 전역하고 갔던 방송댄스학원은 어린애들뿐이라 수줍어서 못 갔다.
검도가 어떤 운동인지 기타를 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유도의 기술 하나 피아노 연주곡 하나 멋지게 해내지 못한다.
경험이 단지 한 번의 체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일부가 되고 한 뼘의 성장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이 쌓여야 한다.
겉만 훑어가는 게 아니라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 경험은 철저한 고민과 결단의 과정이 필요하다.
대학교 때 전공이 맞지 않았다. 수업시간이 너무 따분했고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꾸역꾸역 졸업을 했다.
첫 직장까지 전공을 살렸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1년을 못 채우고 도망치다시피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이미 대학교 1학년때 전공이 나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난 재수도 편입도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 친구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직장에 입사해서 그때부터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라는 막연하고 근거 없는 희망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난 결국 첫 직장과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 시절 나의 적성에 대해 처절하게 고민했어야 했고 인생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다면 과감하게 결단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