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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Aug 13. 2022

야근이 끝나고 난 후

실로 오랜만에 야근을 하고 10시쯤 퇴근을 했다.

라떼는 야근이 일상이었지만 요즘엔 가끔 있는 일이다.  달에 한두 번 정도.

하루가 정말 다이내믹했다. 그런 날이 있다. 장마철 폭우가 쏟아지듯 업무가 끝없이 이어지고 태풍에 번개가 치듯 이슈가 계속해서 터지는 날. 오늘 하루 4번의 회의가 있었고 74통의 전화통화를 했다. 메신저와 카톡까지 포함하면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했고 소통을 했다.


일로 만난 사이는 적당한 거리와 선이 필요하다. 회사에서 감정이 상하는 경우는 대부분 사람 때문인 지라 서로가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게 최대한 조심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조건 "감사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를 습관처럼 내뱉는다. 비대면의 경우 특히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단어 선택에 주의를 기울여 조심스레 문장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래서 메일 마지막 문장 역시 대부분 '감사합니다 또는 수고하세요'로 최대한 공손하게 끝을 맺는다.


이처럼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오늘 나는 백번 이상 에너지 소모가 있었다. 거기에 야근까지 했으니 내가 초사이어인도 아니고 에너지가 남아있을 리 없다.

유난히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바닥난 체력만큼 마음도 기운이 없다. 상사에게 칭찬을 듣거나 동료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어떤 공로를 세운 아주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화장실도 안 가고 열심히 일했음에도 퇴근길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쓸쓸해진다. 




야근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나는 부서에서 가장 늦게 퇴근하는 걸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동료들에 비해 나이도 많았고 딱히 내세울 특기도 없었던 나는 그저 하루하루 성실하게 노력으로 승부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정시퇴근이 조직 문화의 가장 중요한 척도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야근이 일상이었던 대다수의 70년대 리더들에게 야근은 아직 버릴 수 없는 직장생활의 필수 아이템이다.


나도 예전엔 회사생활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정시 퇴근만 보장된다면 모든 걸 참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대체로 정시퇴근을 하는 분위기가 되다 보니 업무시간에는 최대한 엉덩이를 떼지 않고 업무에 집중한다. 점심시간에도 식사만 빨리 하고 와서 일을 하거나 아예 자리에서 도시락이나 빵을 먹으면서 일을 하기도 한다. 동료들과 함께 하는 느긋한 점심과 산책, 티타임은 정시퇴근만 가능하다면 꼭 사지 않아도 되는 사치품으로 여기고 과감히 포기할 수 있다.   


업무시간에 치열하게 일하고 퇴근시간에 눈치 보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일을 잘하고 멋있는 직장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대체로 일 잘하는 사람은 일이 많다. 주어진 일을 잘 끝내고 나면 곧바로 새로운 일이 주어진다. 똑같은 일을 끝내지 못한 사람보다 자연스럽게 일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예민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의 보유자들은 찝찝한 기분 때문에 퇴근시간에 발이 잘 떨어지질 않는다. 일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만 야근이 반복된다. 오늘까지 꼭 해야 하는 일들만 끝내면 퇴근해야 한다. 내일까지 꼭 해야 하는 일들은 내일 하자.

  



이제는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주 40시간 이상 근무를 하면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다. 야근을 하면 왠지 내 시간을 뺏긴 거 같고 낭비한 거 같다. 정시에 퇴근해서 운동을 하거나 친구를 만난다. 취미생활이나 자기 계발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회사에서의 업무시간보다 퇴근 이후의 내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이 많은 부서는 인기가 없다. 인정받기 힘든 업무더라도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을 낫게 여긴다. 회사에서 무엇을 꼭 이루어보겠다는 다짐이나 열정도 유행 지난 촌스러운 생각으로 취급된다.


야근할 정도로 일이 많으면 사람을 더 뽑는 게 정상이다라는 예전 팀장님의 얘기에 충격받은 적이 있다. 일이 주어지면 혼자서 밤을 새더라도 어떻게든 완수하려고 아등바등 살아온 내 모습은 그저 조직의 착실한 노예였던 것일까. 일이 늘어나면 사람을 충원해야 하지만 야근을 하면서라도 일을 해내니 한 사람의 몫은 계속 늘어난다. 반대로 일이 줄어도 사람을 줄이기는 쉽지 않으니 회사 입장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업무량에 맞춰 수시로 인원을 조정하기는 어려우니 야근을 완전히 폐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일찍 퇴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자 근무시간을 최대한 타이트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비근로시간을 입력하는 시스템도 생겼다. 흡연, 매점, 카페 등 업무 외에 쓰는 시간을 10분 단위로 입력하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권리인 정시 퇴근을 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통근이라는 한자가 통할 통, 부지런할 근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직장인은 기본적으로 부지런하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아침 일찍 어딘가를 가는 것은 훈련이 되어있지만 회사는 훨씬 시간도 길고 훨씬 힘들고 피곤하다. 심지어 방학도 없이 연중 계속된다. 직원들이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믿음에서부터 회사의 제도와 문화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아무리 통제하고 잔소리해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으로 나누어진다. 심지어 성인들이 모인 회사에서 직원들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야근을 한다는 건 나의 소중한 저녁을 포기하는 것이다. 가족, 친구, 운동, 취미, 공부, 연애 등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약속 일지 모른다. 어쩌면 인생을 바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 모든 시간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고 우리의 행복이다.


직원을 믿고 직원들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최대한 야근하지 않는 환경을 적극 만들어주시길 이 땅의 모든 CEO분들께 간곡히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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