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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Sep 20. 2022

직장생활의 무게가 버거울 때

20여 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몸과 마음에 병이 생겨서 힘들어하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을 많이 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근무 형태, 사방에서 날아오는 크고 작은 스트레스, 야근과 회식으로 계속 쌓여만가는 만성피로까지. 이 시대 몸과 마음이 매우 건강한 직장인이 있다면 분명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거나 꿈의 직장에 다니고 있을 것이다.

오래 앉아 있음으로 생기는 각종 디스크와 치질,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과 공황장애, 계속된 야근과 회식이 쌓여 발생하는 번아웃, 만성피로증후군 등은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힘들게 하는 질병들이다. 그 외에도 위염, 고지혈증, 지방간 등 다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얻은 질환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그런데 지난 20년간 거북목, 디스크, 치질로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은 못 본거 같다. 특정한 신체적 질환은 대체로 치료법도 명확하고 일정기간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회복이 가능하다.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곪아가는 정신적 질환은 직장을 다니면서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원인모를 무기력과 의욕 저하로 시작해서 불안, 대인기피, 공황장애 등 마음의 병은 방치하면 순식간에 일상을 파괴하는 무서운 질병으로 자라난다.

그렇게 회사를 그만둔 동료들이 여럿 있었다. 공황장애로 대중교통 이용이 힘들고,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만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기도 한다. 심하면 땅이 꺼지고 죽을 것만 같은 공포에 시달리기도 한다.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는 연예인들이나 걸리는 병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직장인에게도 디스크만큼이나 흔한 질병이 된 것 같다. 원인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인 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걸 먹고 술을 마신다. 운동으로 땀 흘리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씻으려고 애쓴다. 등산, 낚시, 악기, 봉사활동 등의 취미생활에 빠져보기도 한다.




매일같이 야근하던 시절, 퇴근이 아무리 늦어도 선배들이 그냥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고생했다면서 반주라도 꼭 한잔씩 하고서야 다 같이 집에 갈 수 있었다. 덕분에 다음날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또다시 야근을 해내곤 했다. 아플 시간도 없다는 말이 정말 실감이 되었다. 일이 끝나면 빨리 집에 가서 침대에 쓰러지고 싶었지만 선배가 사주는(사실은 본인이 먹고 싶었던 거지만) 밥과 술이 스트레스 해소에 한몫을 한건 분명해 보인다.


단순히 일이 많아서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엔 일이 많고 힘들었지만 모두가 함께 고생하고 있다는 전우애가 있었다. 적어도 내부에는 적이 없었다. 우리는 하나라는 가슴 벅참도 가끔 느꼈다(사실 노래방에서 어깨동무하고 노래할 때 가장 벅찼다).

그에 비해 요즘은 일단 외롭다. 전우애는커녕 동료의식도 별로 없다. 각자도생이다. 누구는 매일같이 야근이고 누구는 매일 칼퇴다. 일을 잘하면 칭찬받는 게 아니고 일을 더 받는다. 직장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퇴근 이후의 내 삶이 훨씬 더 중요하다.


예전에는 상사의 지시가 절대적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이 훨씬 많다 보니 상사의 지시를 완전히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었다. 틀리면 혼나고 다시 하고, 또다시 혼나고, 그것이 일상이었다.

요즘은 수평적인 소통을 중시하다 보니 표면적으로는 일방적인 지시가 거의 없다. 기획단계부터 실무자에게 계속 의견을 요구한다. 누구나 정보 수집이 가능하다 보니 상사는 상사대로, 실무자는 실무자대로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상대가 예상하는 수준을 뛰어넘어야 한다.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만은 참을 수 없다.




겉으로만 보면 예전보다 마음의 병이 더 많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근무시간은 짧아졌고 조직문화는 수평적으로 바뀌었고 회식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더 바빠졌고 마음은 더 외로워졌다.

나도 칼퇴와 저녁이 있는 삶을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의 마음이 행복해지는 건 아닌가 보다.

직장에서 최대한 짧게 머무르고, 남들보다 적게 일하고, 스스로 마음의 벽을 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막을 수는 없다.



중요한 건 머리와 마음이다.

스트레스는 머리로 들어가서 마음에 쌓인다.

매사에 손익을 따지고 동료들을 경쟁 상대로만 생각하지 말자.

오히려 남들보다 조금 손해 보더라도, 조금 늦더라도, 스스로에게 멋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이미 스스로 알지 않는가. 마음이 편하고 따뜻하다면 그것이 옳은 방법이라 믿는다.

이토록 좋아진 근무 환경에서 조금만 여유롭고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직장생활에 임해보자.


그리고 가끔 그렇게 멋있었던 나를 적어보자.

나의 마음과 생각을 글로 써보자.

기억하고 싶은 일, 고민되는 일, 후회되는 사건, 희열을 느낀 순간. 어떤 것도 상관없다.

글을 쓰는 순간 똑같았던 직장생활이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할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건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는 자양분이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견디면서 내 마음의 넓이를 늘려간다면 어느 날 직장생활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졌음에 소름이 끼칠 때가 올 것이라 믿는다.


여유로운 마음과 글쓰기.

이것이 감당하기 힘든 직장생활의 무게를 견디는 나의 작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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