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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Nov 14. 2022

나는 왜 회사원으로 사는가

그저 당연한 것처럼 대학을 갔듯 졸업할 때가 가까워오자 자연스럽게 취업준비를 했다.

다른 길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친구들 모두 똑같이 이력서를 썼고 몇몇은 공무원 시험공부를 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공통적으로 반듯하고 성실한 이미지의 친구들이었다. 답답하고 지루해 보이는 공무원의 길을 선택한 그들을 비웃으며 나는 일한 만큼 보상받는 능력 있는 직장인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슨 일이든 빨리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졸업과 동시에 작은 벤처회사에 입사했고 그 후로 직장을 5번 옮겼다. 회사가 어려워져서, 계약기간이 끝나서, 또는 싫증이 나서 그만두기도 했다.

그렇게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건 뜻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었고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그래도 지금 다니고 있는 6번째 직장은 10년이 넘었으니 이제 어느 정도 정착은 한 것 같다.


나는 과연 무엇을 쫓아 여기까지 왔을까.

5번의 이직  주체적으로 고 싶은 일을 찾아 과감히 선택했던 건 한 번뿐인 거 같다. 나머지는 그 상황에서 가장 빠르고 괜찮아 보이는 길로 깊은 고민 없이 일단 들어갔다.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적어도 남들 사는 만큼은 누리며 살기 위해 회사를 다녔다면 나름 성공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대부분 대출이지만 집도 마련했고 두 자녀도 원하는 학원에 보내며 주말엔 외식도 하며 남들처럼 살고 있으니 말이다(매달 빚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하지만 그저 살기 위해, 생존을 위해 일한다면 동물과 다른 게 무엇이겠는가

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아실현을 이루어가야 인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인생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2가지 축을 일과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일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일 자체로 삶의 과정이자 목적이어야 한다.


근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자아실현은 커녕 일의 주체자가 되기도 힘들다.

분명 성인이고 수년간 일을 했지만 여전히 상사에게 혼나고 눈치 보고 피하고만 싶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업무에 임했지만 내 뜻대로 되는 건 별로 없고, 열심히 할수록 일이 늘어가는 것 같은 착각 아닌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월요병에 시달리고 카페인에 의존하며 점점 머리도 빠지고 체력도 저하된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일에 몸은 퇴근해도 머리는 계속 업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퇴근해서 밥 먹고 핸드폰 좀 만지작 거리다 보면 벌써 잘 시간이고, 또다시 출근이다.

차라리 야근을 하는 게 마음이 편해 사무실에 남아 조용한 저녁 시간에 일에 몰입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뿌듯함도 잠시, 별이 빛나는 퇴근길은 순식간에 공허함으로 뒤덮인다.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대기업을 시작으로 정시퇴근이 가장 중요한 복지이자 조직문화가 되어버렸다. 기업들은 칼퇴데이, 가족사랑의 날 등 다양한 캠페인을 시도했다.

그래도 잘 지켜지지 않자 PC 전원을 꺼버리는 등 강제적으로 퇴근을 종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직장인들의 만족도가 올라가고 행복해졌을까.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1년 내내 퇴근시간이 똑같다고 생각하면 좀 별로다.

물론 사람의 성향에 따라 매일 반복되는 루틴이 편안하고 안정감이 들기도 하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끔찍함이 먼저 느껴진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업무에 푹 빠져 미친 듯이 일을 할 때가 있고 반복되는 일로 매너리즘에 빠지는 슬럼프 기간도 있다. 3,6,9가 고비란 말이 있을 정도니 3개월마다, 또는 3년마다 슬럼프는 수없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렇게 미친 듯이 일하는 시기가 있어야 소위 직장생활의 내공이라는 것이 단단하게 만들어다.

1만 시간의 법칙처럼 절대적인 시간의 축적도 필요하다. 하지만 일정기간 집중해서 깊이 있게 파고드는 시간을 통해 한 번에 몇 개의 계단을 뛰어넘어 성장하는듯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쇠를 불과 망치로 수없이 단련하여 연장이 만들어지듯이 일에 몰입하는 시기를 통해 어떤 업무와 사람에도 견딜 수 있는 진짜 회사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


내공이 단단해졌다고 어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팀장이 되고 임원이 되어도, 상사가 있는 한 스스로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는 없다. 오히려 올라갈수록 그 횟수와 강도는 더욱 빈번해지고 강해진다.

어느 위치에 있던 주어진 업무에 몰입해서 최선을 다하고 더 많은 스트레스와 업무를 견뎌나갈 때 회사원으로서 느낄 수 있는 성취감과 만족감은 더 커진다. 결국 수없이 많은 고통을 지나는 과정이 회사원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아실현을 이루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그렇다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은 일을 하라는 건 절대 아니다. 결국 우리는 나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생이 한 번 뿐이라 내 청춘을 회사원이 아닌 다른 직업으로 살아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아쉽다.

하지만 회사원으로 경험할 수 있는 세상도 무궁무진한 거 같다. 아직도 낯설고 어려울 때가 많은 걸 보면.

20여 년 회사원으로 살았지만 하루하루 워라벨을 지키며 자아실현도 이루어가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특별한 노하우는 없다.

단지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저 내 할 일을 묵묵히 해내며 작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면 충분하다.

집에 가서 가족들을 돌볼 에너지가 남아있고 운동하고 자기 계발할 수 있는 약간의 여유가 있다면 완벽에 가까운 직장인이다.

퇴직 후에 후배들이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선배로 기억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마음이 우울하고 괴롭고 슬픈 날에직장생활은 쉬지 않고 계속된다.

날마다 행복할 순 없지만 소소한 즐거움과 보람, 희열과 기쁨수시로 찾아온다.


그러니 의연하자.

전쟁터 같은 회사지만 전쟁 중에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꽃은 피니까.

이렇듯 예측 불가지만 예측 가능한 회사원의 삶이 좋다. 내가 회사원으로 사는 이유라고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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