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집을 생각하면 된장찌개가 떠오른다.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뚜껑이 달그락달그락거리며 내뿜는 향기는 순식간에 혀에 침이 고이게 했다.
결혼을 하고 둘째를 낳았을 때 장모님, 장인어른과 합가 하게 되었다.
된장찌개 냄새는 어느덧 김치찌개 냄새로 바뀌었다. 돼지고기를 듬뿍 썰어 넣은 묵은지 김치찌개.
나는 경상도 집안의 아들이고 아내는 전라도 집안의 딸이었다.
그렇게 취향도 살아온 환경도 모든 것이 달랐다.
그래서 결혼은 새로운 문화와의 만남이고, 충돌이고, 융합이다.
결혼한 지 3년. 문화의 융합이 미처 다 이루어지기 전에 신문화권의 인류 2명이 탄생했고, 구문화권 인류 2명이 합류하였다. 우리는 6명의 대가족이 되었다.
다문화의 충돌이었다. 같은 공간 아래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종종 다투셔서 방을 따로 쓰셨지만 두 분 다 손주들 앞에서는 꼼짝 못 하셨다.
주로 다툼은 장인어른의 흡연 때문에 일어났다. 밖에서 몰래 피셨지만 꼭 아내한테 걸리곤 하셨다.
그리고 경마장에 가신다고 혼나고 집에 있으면 씻으라고 혼나셨다.
첫 번째 문화충돌은 집안의 서열이었다.
아버지는 절대적인 서열 1위셨다. 두 끼 연속 같은 국은 절대 안 드셨다. 늘 생선이나 고기 같은 메인 디쉬가 있어야 했다. 중간에 국수나 간식도 꼭 챙겨드셨다.
6명의 대가족에서 나는 서열 1위가 되었다.
갓 한 밥과 이제 막 끓인 국과 새로 만든 반찬들. 그 첫 번째 상을 내가 받았다. 물론 시간이 맞으면 다 같이 먹기도 했지만 장인어른이나 장모님은 거의 따로 드셨다. 내가 먹고 난 후에 아이들, 그리고 마지막에 장인어른이 드셨다.
장모님에게 밥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밥을 제 때 드시지 않으면 손이 떨리신다고 하셨고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세끼를 때맞춰 드셔야 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가족들에게도 정말 중요하게 밥을 챙기신다.
평소에야 일찍 나가니까 상관없지만 재택근무라도 하는 날에는 아침을 안 먹기 위해 방에 몰래 숨어있기도 한다. 주말에 빵을 먹거나 치킨을 먹더라도 꼭 밥을 먹여야 한다는 사명을 잊지 않으신다.
회식을 하고 오는 날에도 조금만 더 먹으라며 밖에서 먹는 것은 잘 인정해 주지 않으신다.
표준보다 조금 높은 체중 상태지만 항상 살이 좀 쪄야 된다며 많이 안 먹는 것 같은(실제론 아닌데) 나를 걱정하신다.
두 번째 문화충돌은 집안의 온도였다.
아내는 4월까지 내복을 입고 다닐 정도였다. 보일러는 늘 빵빵하게 돌아갔고 더운 걸 싫어하는 나는 겨울에 답답하고 더워서 잠을 자기가 힘들다. 늘 감기를 달고 사는 장모님과 아내 때문에 여름에도 에어컨을 마음 놓고 틀 수가 없다. 찬바람을 조금만 쐬거나 머리를 감고 조금만 덜 말려도 감기가 걸리곤 했다.
항상 아이들을 꽁꽁 싸서 키웠고 아이들이 잘 때면 늘 베개가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머리에서 땀이 나고 했다. 왜 땀이 날 정도로 덥게 사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금도 아내는 자주 아프다. 면역력을 기르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세 번째는 아이들에 대한 자율적 문화이다.
아내가 학창 시절 늦잠을 자면 장모님은 절대 깨워주지 않으셨다고 한다. 심지어 시험기간인데도 깨우지 않아서 늦은 적도 있다고 했다. 엄마에게 화를 냈더니 안 가는 줄 알았다고 하셨단다. 한 번이 아니고 매번.
지금 아이들은 알아서 잘 일어나는 편이지만 가끔 늦잠을 자도 할머니는 절대 깨우지 않으신다.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세수도 못하고 뛰어서 등교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아픈 거나 안 좋은 것 같으면 학원도 물론이고 학교도 가지 말라고 하신다. 아이들이 방을 치우지 않아도 숙제를 하지 않아도 절대 잔소리는 없다. 아주 작은 일에도 칭찬만 듬뿍 해주신다.
어느 날 유치원에 가기 싫어 나무에 매달려 울고 있는 나를 12층에서 내다보시며 빨리 가라고 소리치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내자식이 양말 끝선을 맞춘다고 집에서 쫓겨나서 문 앞에서 서럽게 울었던 기억도 난다.
자율이 맞는지 개입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숙제도 잘하고 학교도 절대 빠지지 않고 매우 성실하다. 그리고 장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충분히 먹고 자라 배려심이 깊고 착하다. 물론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아이들을 향한 그 마음이리라.
네 번째는 아내의 양말 투척 문화였다.
결혼하면 변기를 올리고 볼일을 안 봐서, 치약을 끝에서부터 안 짜서, 잠잘 때 코를 골아서 같은 아주 사소한 일들로 싸운다고들 한다. 우리는 그런 일에 있어서는 어느 쪽이든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었다. 변기를 안 내렸으면 내리면 되고, 치약은 마지막에만 잘 짜면 되고, 코도 심하게 골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결혼 16년 차에 아직 방귀도 안 텄을 정도다.
하지만 처음에 양말을 세탁기에 안 넣는 건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늘 그러셨고 그걸 치우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했었다. 얼마나 치욕스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배우자의 양말을 치우는 일은 그렇게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결혼 전의 습관들. 나도 아내도 딱히 고쳐진 게 없는 것 같다.
그저 그냥 함께 살기로 했으니 서로 이해하고 살아가는 거다.
문화의 충돌은 피할 수 없지만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문화의 융합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리고 평화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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