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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타이거 Jan 20. 2023

아빠와 아버지

어버이날도 아니고 아버지 기일도 아직 멀었는데 유독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 곧 명절이라 그렇구나.

3년 갑작스레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3개월 만에 바람처럼 떠나가신 아버지.


국민학교 4학년때였는6학년때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어느 날 엄마가 이제부터 아빠를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셨다.

이제 컸으니 그렇게 해야 한단다.


엄마와 늘 가까운 친구처럼 친밀한 관계였지만 아빠는 왠지 모를 거리감이 있었고 어려웠다.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는 어쩌면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가족들을 부양해야만 하는 가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은 곧 권위였고 어떤 상황에도 절대 흔들려선 안 되는 존재일 뿐이었다.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어 산다는 게 무엇인지 아주 조금 알기 전까지 아빠는 그저 아빠였다.

절반의 유전자를 복제해서 나를 만들고 먹이고 입히고 놀아주고 늘 함께인 가장 가까운 사람.

가부장제고 뭐고 나를 목마태우고 나를 안고 나를 보며 행복해하는 유일한 사람말이다.


아빠를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건 가부장제가 우리 둘 사이에 적용되기 시작한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먹을 땐 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들어야 먹을 수 있었고 자기 전엔 꼭 안방에 가서 아버지께 인사를 드려야 했다. TV 리모컨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권한이었다. 드라마나 예능을 보고 있다가도 아버지가 오셔서 뉴스로 채널을 돌리시면 누나와 난 군말 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아빠가 아버지가 된 순간부터 우리는 마치 아빠와 아들에서 가장과 가족구성원의 관계로 바뀐 거 같았다.




오늘 아들과 목욕탕에 갔다.

오랜만에 아들 등을 미는데 아프다고 몸을 비비 꼬아서 한참이나 씨름했다. 덕분에 제대로 밀진 못했지만 서로 살갗을 맞대며 웃을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끔 아버지와도 목욕탕에 갔었다.

탕에 들어가는 게 답답하고 등을 밀면 너무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지만 꾹 참았다. 아버지와는 감히 장난칠 수 있는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저 아버지가 물속에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고 씻으면 같이 씻고 등을 밀면 가서 말없이 밀어드릴뿐이었다.


농구를 좋아하는 아들과 가끔 농구를 한다.

아직 아빠를 이기기 힘든 아들을 상대로 장난 삼아 설렁설렁 즐기면서 항상 이겨주곤 한다.

아빠는 축구를 좋아하셨다. 아빠 회사에서 시합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종횡무진 열심히 뛰어다니시던 아버지가 기억이 난다.

나도 동네에서 친구들과 늘 축구를 했었다.

근데 왜 아버지와 축구한 기억은 없을까.

아버지는 나에게 축구를 가르쳐주고 싶지 않으셨을까. 나처럼 아버지의 실력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으셨을까. 아니 그냥 아들과 즐겁게 뛰어놀고 싶지는 않으셨을까.




그 시절 아버지들은 바깥양반이라 불렸다.

엄마는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하고 아버지는 밖에 나가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도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육아와 교육은 아버지의 몫이 아니었다. 집에 계실 때도 도와줄 수 없었다. 오늘 하루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친구들과는 잘 지내는지, 고민은 없는지 아버지도 분명히 궁금하셨을 거다.

하지만 아버지도 가장의 역할이 곧 아버지의 역할이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셨을 것이다.

그래 궁금하지 않으셨을 리 없다.

아들하고 장난치고 같이 놀고 싶으신 거 참느라 엄청 힘드셨을 거다.

아들이 조금 크면서부터는 아빠로서가 아니라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권위를 아들에게 전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을 거다.

그래서 그랬던 거다.

아버지도 계속 아빠이길 원하셨을 거다. 간절히도.


그 시절 아빠와 아들이 아니라 지금 시대 아빠와 아들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아빠든 아버지든 둘도 없는 친구 같은 부자관계가 될 수 있을 텐데...



#글루틴 #팀라이트 #매일글쓰기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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