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일기

서울의 밤

by 윤과 슬

귀향길 기차표는 20살의 수강신청이 생각난다.

누군가가 말했던 쉽고 재밌는 수업을 넣으려면 부러 좋은 컴퓨터가 있는 학과실로 향해야 했다. 분명 정각에 눌렀는데, 이미 차버린 수업에 내손을 허망히 쳐다보던 기억.

기차표는 8시도 아니고, 7시에 열린다. 기상시간은 7시가 넘어야 겨우 적정수면시간을 지킬 수 있는데.

첫 한두 해는 6시 40분에 일어나 노트북과 핸드폰으로 내내 바라고 있었더랬다.

명절이 뭐길래. 대국민 수강신청이라는 말이 딱이었다.

하지만 우직한 내손은 이미 몇만 명을 앞에 두고 있다. 어떤 날은 출근 후에야 겨우 접속한 적도 있었었다.

그렇게 접속을 해도 결국은 예약대기를 걸면 다행히 무사히 귀향길에 오를 수 있었다. 2시간의 고뇌와 소중한 아침잠을 포기한 대가가 예약대기라니.

어느덧 타지살이 10년이 되어가고 나서는 일정을 챙기기도 쉽지가 않다.

이젠 취소표가 풀리는 날 걸리는 예약대기가 얼마나 피가 말리는지. 그 고통보단 그냥 하루 늦게, 하루 일찍 올라오는 게 나한테 잘 맞다는 걸 알고 있다.

이번 추석도 그랬다. 예약당일은 물론, 취소날도 놓쳐 연휴 중 하루를 서울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병원도 다녀오고, 머리도 자를까.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매년 부득부득 제시간에 귀향길에 올라서일까.

하지만, 이상했다. 그 빠르던 도시가 갑자기 속도를 늦춘 느낌. 직전까지 몰아치던 스탠스가 갑자기 이명처럼 느껴진다.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이던 운동을 하다,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끝끝내 억지로 올리던 둑이 무너지는 느낌. 그동안 그 둑에 가려져 보지 못하던 것들이 보인다.

운동 때문에 부러 먹지 않던 맥주를 샀다. 냉동실에 맥주잔을 얼려둔다. 씻는 동안 시원해져라.

대충 머리를 말리고, 지난 주말에 샀던 당근라페를 꺼낸다. 맥주의 참맛을 위해 양치까지 하고 앉아있는 게 웃기다.

언젠가 친구에게 들었던 얇은 잔은 맥주의 온도가 입술에도 느껴진다. 안온하다. 지금 딱.

왠지 모르게 텅 빈 것 같은 서울은 내게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


바쁜 도시 안에 살다보니, 바쁘지 않으면 죄를 지은 것 같다. 그 정체모를 감정의 화살은 이내 나에게 꽂히고만다.

태생적으로 여유로운 성정덕에 타인과 나의 간극은 더욱 강조된다.

좋아하는 것을 쫒기도 아쉬운 시간에 내가 아닌 것들을 향하려니 마음속엔 억울함이 점점 쌓인다.

하지만 그 억울함이 넘치기 전에 꼭 이런 시간들이 찾아온다.

너는 아직 더 노력해야한다는 듯이.


이방인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