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일기

유랑3

by 윤과 슬

한 나무 안에서도 곧 떨어질 것 같은 바싹 마른 잎과 아직은 여름의 기운을 품은 푸릇한 잎이 공존한다.

여러 시간을 담은 나무가 보여주는 풍경에 멍.


예약도서의 기한이 오늘이라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도서관을 향했다. 잰걸음이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머릿속으론 허기진 오후를 대비하려고 메뉴를 모색한다. 발걸음도 머릿속도 바쁜 시간. 주변의 풍경은 들어올 틈이 없다.


책을 받고 나서야 여유가 조금은 있다는 걸 깨닫는다.

조금 돌아가도 맛있는 김밥집을 들릴 수 있겠다.

횡단보도 근처를 배회하는 비둘기 두 마리가 영 불안하다.

언제 푸드덕거리며 날아갈까, 주변의 사물과 부딪히지만 않으면 된다는 낙천적 생물체에게서 한껏 멀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초록불로 바뀌니 한 사람을 사이에 두고 좁게 날아간다.

나에게 일어났으면 주저앉고 말았을 거라고,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간에 새긴다.

그러다 길을 빼곡히 채운 나무가 시야에 걸린다.

푸릇했던 청춘이 점점 농익어가는 것처럼 나뭇잎이 곳곳에서 세월을 야기하는 것 같다.

그제야 느껴지는 것들. 빠른 걸음 탓에 땀이 날 법도 하건만, 선선한 바람에 몸을 식히고, 블라인드로 가리던 촉감 없던 햇빛은 기회주의자처럼 나를 가득히 데운다.


뭐 그리 급하니.

눈앞에 스마트폰을 보거나, 30분 뒤 일을 대비해 봤자 뭐 그리 달라진다고.

내일 쓸 글을 걱정해 봤자, 이번주 선곡표를 걱정해 봤자 뭐 그리 크게 바뀐다고.

쌓여가는 것들에 집중을 하려고 했는데, 어느덧 쌓아야 할 것들에 집착한다.

나는 흘러가는 중인데 흐름과 별개의 점을 찍으려 한다.



잠시 몸을 맡기자. 몸에 힘을 빼면 결국은 수면 위로 떠오를 거야.

여러 잎이 모여 하나의 나무가 되고, 여러 시간이 담겨 지금의 나무가 되는 것처럼.

이 시간들을 모아 나를 만드는 거야. 그러니 힘을 빼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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