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영어, 수학 등 여러 가지 공부를 가르쳐주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선생님은 한 가지 과목만 가르쳐야 해서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초, 중, 고 내 학창 시절을 통틀어 롤모델이 될만한 선생님을 만나지는 못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안양에서 잠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오전반, 오후반이 있어서 헷갈려서 학교를 못 가고 그랬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서울로 이사를 갔는데 그 당시 안양에서의 그 남자 담임선생님이 잘 지내는지 전화도 몇 번 왔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엄마께서도 그 당시 얼마 안 다녔는데 왜 몇 번 전화가 왔는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나에겐 당연히 그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전학 간 학교의 1학년 교실은 내 기억에 수십 명의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고 책상이 맨 뒤까지 있어서 전학 온 날 앞에서 인사를 하고 맨 뒤에 가서 앉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의 담임선생님은 무서운 여자 선생님이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중년의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내가 여자 부반장이었고 특별한 다른 기억은 없는데,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복도에서 만났을 때 반장이 됐다고 하니까 엄청 축하해 주셨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한 여자선생님이셨는데 이때부터는 조금씩 기억이 더 나는 것 같다. 반장선거할 때 내 이름이 제일 위에 써져서 좋아했던 기억. (그 당시 성적순으로 여자 5명, 남자 5명을 반장 후보로 칠판에 씀. 이 얼마나 비인권적인 행태인가!) 내가 반장이라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신 것 같고, 특별활동 때 발레 수업을 함께 들었던 것 같고, 중간에 선생님이 교통사고가 나셔서 젊은 여자 선생님께서 대신 몇 주 와주셨던 것 같다. 나중에 엄마 말씀으로는 그 당시 워킹맘으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냐며, 바쁜 아침에 출근하시다가 택시에 옷이 끼어서 사고가 났었던 것 같다고 하셨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은 좀 젊은, 갓 결혼하신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엄청 무서우셨던 기억이 있다.
반이 정말 쥐 죽은 듯 조용했던 기억, 본인이 먹은 커피잔을 내가 씻어왔는데 밑에 커피 자국이 지워지지 않았다고 지적받았던 기억,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사셨던 기억이 있고 특별활동 때 영어수업을 해주셨던 기억도 있다. 분단을 나눠서 What is that? That is a lion. 이런 노래를 번갈아가며 신나게 불렀었다. 그리고 특별한 기억은, 수업시간에 아랫배를 감싸시거나 만지는 행동을 가끔 하셨는데 어린 나이에도 신혼이시니까 혹시 임신하신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 추측은 나중에 알고 보니 맞았다!)
학생들에겐 호랑이 같았던 선생님은 학부모님들에겐 아주 친절하셨던 것 같다.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가던 날 앞에서 인사하며 울던? 나는 안 울고 친구들이 울었나? 아무튼 그런 기억도 있다.
충북 청주로 이사를 가서 만난 담임선생님들은 모두 중년의 남자선생님들이셨다.
4학년 때 선생님은 전학 간 날 내 성적표를 보며, 반 아이들이 모두 앉아있는데서
'000보다 공부 잘하겠는데?' 이런 말도 하셨다. (지금 같으면 그런 말은...)
그런데 시험방식이 이전 학교와 달랐던 것 같은데 매번 보는 시험에서 잘 못 봐서 좌절감도 느낀 것 같다. 이 시점이 엄마가 전과를 끼고 가르쳐주지 못하던 시점과 일치한다. 속셈학원 같은 것을 꾸준히 다닌 것 같은데 수학 연산은 매일 하니까 좀 늘었던 것 같은데 다른 공부는 해도 안 늘었던 것 같다. 학원선생님은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본인이 선택한 영어문제집에 자부심이 있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어 단어 밑에 한글 발음이 그대로 쓰여있었는데 별로 안 좋은 문제집 아닌가 싶다. 학원 선생님 차로 아이들 픽업을 해주셨던 것 같다. 그런데 보조석에 앉는 걸로 다른 남자아이와 거칠게 신경전을 벌인 것이 기억에 남는다.
5학년 때, 6학년 땐 모두 그냥 막 즐겁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5학년 때 선생님이 좀 좋으셨던 것 같다. 해양소년단 같은 것도 하고, 구부정하게 걷는다고 허리를 피고 걸으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같고, 하지만 시험을 못 보면 복도에 죽 나가서 주먹 쥐고 엎드려뻗쳐도 하고, 벌을 받기 싫으니까 친구랑 짜고 처음으로 커닝을 해서 마음 졸이며 교실에 앉아있었고, 이런 일들이 5학년 때인지 6학년 때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왜인지 인기투표 같은 것을 해서 성격이 왈가닥 같아서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어울려 놀던 내가 1등을 했는데, 어쨌든 당시에 인기가 많은 것은 좋았으나, 인기가 많고 싶은데 표를 못 얻은 학생들의 속상함은 어찌할 건지, 왜 그런 투표를 한 건지 지금 와서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전학.
6학년 2학기 때 만난 나이가 지긋하신 여자 선생님은 기다랗고 두툼한 막대기로 학생들이 뭔가를 잘못하면 손바닥을 때리셨다. 세게. 그러다가 어떤 학생이 맞으면 아프니까 피했는데 선생님 본인이 학생 손 밑에 손을 대고 있다가 맞으셨고, (자기가 휘두른 막대기에 자기 손을 친 것이다!) 그 뒤로 너무 아팠다며 우리를 때리지 않으셨다.
이렇게 나의 초등학교 생활은 끝났고,
이것이 1990년대 나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이다.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체벌이 난무했던...
아! 운동장 조회할 때 줄을 조금 잘 못섰다고 머리통을 세게 때리시던 그 키 큰 남자 선생님도 갑자기 기억난다.